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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Jan 02. 2021

바쁜 날들을 살면서 요리를 한다는 것

전복죽을 만들면서




'전복 어딨어?'


본ㅇ, 죽ㅇㅇㅇ. 한번씩 먹을 때마다 생각했다. 왜 야채와 밥만 그득하고 전복은 이리도 찾기 어려운 것인가.

새해 첫날부터 감기 기운에 골골대는 우리 남편. 평소에는 프렌차이즈 죽집에서 그냥 사먹고 말았는데 갑자기 무슨 맘이 일었을까. 마트에 가서 전복 6마리를 사왔다.

'사 먹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 먹으면 더 저렴한데다 전복도 야채도 듬뿍 들어가잖아, 또 프렌차이즈 죽집들이 그렇게 막 맛있는 것두 아니구!'


하지만 오늘의 나처럼.. 꿈틀대는 전복들의 생명력에 시시때때로 놀라면서 껍데기에 붙은 전복을 떼내는 데에 온갖 용이란 용은 다 쓰고 내장과 살을 분리하는 과정을 거쳐 쌀도 불리고 육수도 우려야하고 그 와중에 야채도 다져야하는 보통 멀티능력자가 아니면 힘들것만 같은 이 작업에 2시간이나 쓴 걸 보면, 오히려 사먹는 게  더 이득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요즘처럼 육아에 내 하루의 체력을 거의 다 쓰고 그 외의 시간엔 그저 쉬면서 충전을 해야하는 때에는.

 먹는 건 누가 만든걸 사먹을 수 있지만 육아는 시터를 쓰지 않는 이상 누가 대신하기 어려우니까.




요리를 좋아하는 편인데도 내 삶이 바쁘고 여력이 없을 때 제일 먼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게 요리였다. 간편한걸 찾게 된다. 외식과 포장음식을 사먹는데 돈을 지불하고 나의 시간과 체력을 비축한다.
내게 요리는 에너지와 여유가 충분할 때 하고픈 종류의 어떤 것이었다.



그런 내가 오랜만에 요리라는 걸 했다. (요리라 하기엔 민망한 메뉴일수도 있지만 요즘 내 생활을 보면 이마저도 거창한 요리가 아닐 수 없다....!)

귀찮고, 불편하고, 오래 걸리고, 힘든.
요리라는 세계.
그런데 그 귀찮고 힘든 과정을 지나 하나의 음식이 완성되고나면.. 참 뭐가 이리도 뿌듯한 걸까.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해내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묘한 자신감일까?
'이 메뉴'를 먹고 싶으면 꼭 이 식당을 가야해, '저 메뉴'가 땡기면 저기를 가야해, 이런 것들에서도 조금 자유로워지는 기분도 든다.

'먹고 싶으면 내가 만들어서 먹을 수 있어 !'


언제든, 무엇이든.


의식주 衣食住.
사람이 생존하는 데 필수요건 중 하나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의 생존에 필요불가결인 어떤 것을 내 스스로 생산해낸다는 쾌.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요리를 자주 하는 사람은 되지 못할 것이다.


몇달은 혹은 수년은 제일 조리를 덜해도 되는 재료들을 주로 사서 먹을 것 같고, 배달과 포장음식 또한 종종 애용할 것 같다.
 그리고 가끔은.. 오늘처럼 에너지가 충만한 어느 날,

다른 누군가가 만든 완성된 음식 말고,
어설파도 정성 담뿍 담긴 요리를,

나를 위해, 또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하면서 살고싶다.




내 죽, 남편 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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