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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Apr 17. 2021

유년의 기억이 내게 주는 것

뽀얀 오래된 기억을 더듬으면서



선명한 빛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한 몇몇 장면의 어린 날들이 떠오른다.

언니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무서운 언니 친구 아버지를 피해 마당에 덩그러니 있던 장롱 속에 숨었던 기억. 햇볕 쨍쨍한 여름날 고무줄 하던 기억, 길 건너 아파트 내 가파른 내리막을 전력질주하듯 자전거 타던 기억, 빨간 고무 다라이에 들어 앉은 채 엄마와 목욕하던 일, 특히나 좋아했던 우산모양 초콜렛, 언니들이 다니던 성동국민학교 앞에 있던 계란 완숙 자판기, 언니들과 재믹스 오락기 게임팩을 빌리러 가던 기억, 하늘이 빨갛게 물들다 결국 까맣게 될 때까지 술래잡기 하던 기억.. 그런 것들이 생각이 난다.

그때 너무 좋았네,라 말하려다 썼던 걸 지워본다. 좋았다, 싫었다, 그런 느낌이 있었나. 술래에게 잡히지 않으려 땀을 뻘뻘 흘리며 상기되어 숨고 달리는 어린 나의 얼굴, 자전거 안장에 앉아 내리막을 바라보며 무섭지만 그저 페달을 밟고 내려가는 나, 해가 지면 담담히 안녕하고 집으로 가는 얼굴. 그게 다였다. 복잡하지 않고 하루를 살고 움직이던 날들.

시간이 흐르면 무엇이든가에 초연해지고 좀 더 단순해질 줄 알았는데 마흔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도 여전히 복잡하고 어지러운 마음일 때가 많다. 가끔 아련하게 한번씩 스쳐지나간다, 내 유년의 시절들이. 흑백은 아니지만 또 선명한 칼라는 아닌, 그 정도의 빛으로, 질감으로, 그 시간들이 지금 내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진 않지만.. 자주 꺼내보고 싶다. 나도 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2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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