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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Apr 25. 2021

제주에서의 어느 하루

셋만의 첫 여행, 기억하고픈 순간들을 담아.



아가와 남편이 낮잠 자는 동안 해변 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근처 책방에 도착했다. 언젠가부터 어느 여행지를 가도 그 지역의 책방은 꼭 들리게 된다. 아주 특색있는 책방이 아니면 사실 비슷비슷한 모습인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책방엘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낯익은, 그러나 아직은 읽지못한 독립출판물 두권과 따뜻한 핸드드립 에티오피아를 주문했다. 책방 특유의 공기, 분위기를 좋아하지 커피는 큰 기대가 없었는데 웬걸 너무 맛있었다. 내일 떠나기 전에 원두를 좀 사갈까. 예쁘게 포장된 책 두권과 커피한잔을 들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바빠졌다. '여보 이 책방 너무 예쁘고 커피도 너무 맛있어~!' 남편에게 얼른 말해주고 싶었다.


살면서 유명한 것들 중에 의외로 별로인 것들을 꽤 만나보아서 그런지 땅콩아이스크림도 딱히 생각이 없었는데.. 그냥 한번 사먹어본 아이스크림, 이건 또 왜 이리 맛있어.. 시원하게 웅장한 석벽 앞에서 나눠먹는 땅콩아이스크림, 이것도 참 좋네.





크게 높지 않아 오르기에 부담 없다하는 제주도의 오름들이지만 7개월 아가와 함께 가기엔 어디든 쉬운 곳이 없다. 그래도 한번 도전해본다. 오름까지 길지 않은 길이었지만 역시 쉽지는 않다.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있을 때까지 끌고 가 봉우리 거의 다와서 아가를 안는다. 눈앞에는 일몰과 함께 제주바다가 한눈에 펼쳐졌다. 너무 좋은 걸 보면 말을 서로 잊는다. 제주에 와 몇번 그런 순간이 있었다.


밤에 한번 자면 아침까지 통잠을 자주는 아가를 재우고 남편과 걸어서 서빈백사엘 갔다. 아무도 없는 해변. 걸을까, 하고 갔는데 둘이 마음이 통했던 것 같다. 둘 중 한 사람 "우리 누워볼까?"하는 말에 고민않고 나머지 한사람도 바로 "그래" 대답했다. 남편이 먼저 눕고 나란히 옆에 누울 생각으로 갔는데 자기 위에서 하늘보고 누워보라고 말하는 남편. 무겁다고 거절했는데도 "밑에 추워~ 바닥에 말고 내 위에 누워서 하늘 한번 봐봐~" 마지못해 남편 배 위에 덩그러니 누워 같이 하늘을 봤다. 둘 다 얼마간 말이 없었다. 별들은 소리없이 빛나고 파도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온다.

'이런 거 하려고 우리가 여기에 왔었구나.'


2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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