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준 Apr 29. 2021

나눔, 비움 그리고 채움



미니멀하지 못한 맘과 정신을 갖고 살지만 최근 읽은 미니멀리즘 책들이 효과가 있었나, 오늘은 집안의 몇가지 물건과 가구들을 처분했다. 아가가 많이 움직이고부터 잘 쓰지도 않는 그러나 자리는 많이 차지했던 아기침대, 4~5개월 정도 짧게 모유수유하는 동안 쓰고 지금은 필요가 없는 수유쿠션, 수유시트 등등.. 신생아 때 주로 필요했던 육아용품들을 볼 때마다 애매하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완전히 외동확정을 한 건 아닌데.. 나중에 또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그 마음들 때문에 몇 달을 그냥 계속 방치하고 있었다. 집이 넓어 보관해놓을 수 있으면 큰 고민이 없겠지만 세 식구가 살기에 스물 한평은 생활하기에도 비좁다. 부피 큰 짐들을 갖고 있는 게 또 짐이다. 무슨 맘이 일었는지 그냥 어제 당근마켓에 다 나눔한다고 글을 썼고, 오늘 몇 분이 오셔서 받아가셨다. 나눔 후 가구와 물건들이 있던 빈 공간을 보니 속이 시원했다. ‘혹시나 나중에 둘째 낳으면 그때 또 사거나 나도 나눔 받지 뭐.’


예전엔 물건이 곧 돈이라는 생각에 쉽게 뭐든 잘 버리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젠 조금 달라졌다. 당장 또는 향후 얼마간 쓰지 않을 물건들을 안고 사는 것이 더 부담스럽다. 복잡한 건 내 마음 하나로도 족하기에 집이라도 복잡하지 않았음 하는 마음.

육아용품 나눔 결정이 비교적 쉬웠다면 화장대와 거실장은 한 두달은 고민한 것 같다. 3, 4년 정도 사용했지만 아직도 새것처럼 깨끗하고 또 볼 때마다 기분 좋아지게 많이 아끼는 가구들이었다. 하지만 아가가 기기 시작할 즈음부터 자꾸 머리를 쿵 하면서 얼른 뭘 붙이던지 치우던지 해야지 했는데 모서리 방지대를 붙이려니 나중에 테잎 자국 덕지덕지 남는 게 싫고, 팔자니 제 값보다 아주 헐값에 올려야 팔리는 게 중고시장이다보니 괜히 맘 쓰리고..
그렇게 몇 달을 고민고민하다 오늘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붙이는 것도 파는 것도 아닌 엄마께 드리는 걸로.
너무 오래돼 낡은 친정집 거실장, 제대로 된 화장대 없이 대충 선반 같은 곳에 화장품 두고 쓰시던 모습 떠올리면 진작부터 엄마께 드리는 게 젤 낫지 싶었지만 가구들에 미련을 내려놓는 데에 나도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 같다.
“엄마 내일 용달 불러서 화장대랑 거실장 갖다드릴게요,”
“아이고 화장대 한번 꼭 갖고 싶었는데 딸이 이래 주네~ 넘 고맙다.”
새 것 사드리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좋아하시는 모습 보니 마음이 좀 이상하다.


 어쨌든 나는 비워서 좋고 엄마는 화장대에서 화장해 좋고 우리 아가도 머리 쿵 안하고 엄마집 갈 때마다 보고 싶은 가구 볼 수 있고.
미니멀라이프가 오늘 우리 가족에게 좋은 일을 한 것 같다.


210425

작가의 이전글 미워하는 마음, 이해 안 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