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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Jun 04. 2021

낯가리는 피플러버

초보엄마의 놀이터 적응기


아가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종종 생긴다. 대화는 90% 정도의 비율로 “아기 몇 개월이에요?”로 시작하곤 하는데 최근 놀이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몇몇 엄마들과 역시나 그 질문을 시작으로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몇개월이에요? 몇단지 살아요? 안 보던 애기가 왔네 싶었어요, 첫째시죠? 둘째는 생각없어요? 둘째까진 괜찮아요, 한번 생각해봐요, 애기가 9개월 치고 좀 커보이네요, 저희 애도 두돌 소리 가끔 들어요.
..

낯선 이에게 먼저 다가가기보다 딱 할일만 하고 돌아가는, '놀이'터에서도 온 목적에 충실하도록 미끄럼틀 타고 시소타고 그네타다 그냥 집에 가버리는 나. 다른 어린이, 유아친구들이 " 엄마~ 애기에요. 우와 진짜 작은 애기다. 귀엽다." 하며 각자 엄마에게 우리 아기에 대해 친근한 말을 건네는 소리가 종종 들리지만 그 친구들에게 살짝 웃어주고는 미끄럼틀 다 탔으니 자, 이제 그 다음 장소 그네로 이동, 이런 식으로 보내고 있다.

나도 모르겠다. 진짜 아가랑 할일만 하다 가고싶은 건지, 실은 새로운 사회생활이라면 사회생활, '엄마들'친구를 사귀어 보고 싶은 건지. 사귀는 게 귀찮은 건지, 용기가 없는 건지. 사귄다면 얼마나 잘 맞을지, 한참 성인이 된 지금에 맘 맞는 누군가를 과연 만날 수 있긴 한건지.
놀이터에서 잠시 나눈 가벼운 대화에 벌써 온갖 생각을 다하고 있다.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얼마전 우리집에 놀러오신 김에 우리 아파트 상가 미용실에 커트를 하러 가신 엄마. 커트하고 집에 들어오시면서 말씀하신다.
"주야~ 내 친구 생겼다~ 요기 미용실 아줌마도 혼자 산다카대~ 우리 둘이 나중에 같이 살기로 했대이~ "
같이 사는 일이 진짜 실현될지 안될지 문제는 차치하고, 만난지 하루 된 사람과 함께 살기로 약속까지 할 수 있는 엄마의 무시무시한 친화력. 어딜가나 금방 말 잘 트고, 누구와든 사람 사귀는 능력이 대단한 우리 엄마.
한번은 물어봤었다.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이랑 쉽게 친해져?"
"내가 먼저 말 건다 아이가~ 전화도 하고. 혼자 있으면 뭐하노 외롭다. 기다리고 그런거 없다~ 답답하면 내가 먼저 해뿐다."
속으로 말했다. '멋지다 울엄마..'
사람을 잘 사귀어서, 단순하게 그냥 적극적이라는 이유로 멋지다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게 있으면 속으로 바라기만 하며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노력하는 모습, 그게 멋지셨다.

엄마는 원래부터 그렇게 친화력이 좋았을까. 지금 내 나이때 쯤 엄마는 어땠을까. 애 넷을 키우며 살다보니 자연스레 (건강한!)뻔뻔함도, 용기도 늘어난 걸까.

그런데 난 지금 엄마처럼 외로운가. '엄마들'친구 같은 거 없어도 잘 지내는데 뭐, 가끔 친한 친구들도 보고, 또 매일 책보고 글쓰고 영화도 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 하기도 이렇게 하루가 빠듯한데.

그런데 말이지, 내가 잘지내는 것과 별개로 왜 반가웠지 나. 그 흔하게 건네는 별 내용 없는 말들이. 또래의 사람이 그리운 건가. 아니야 귀찮아. 얼마나 가겠어.
그런데 또 반가워.

사람이 조금은 귀찮고 조금은 두렵고 또 사람이, 필요해.

"엄마, 엄마는 그렇게 사람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도 사람이 좋아?"
엄마께 나중에 여쭤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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