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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Jul 05. 2021

세상은 뚱뚱한 사람을 가만 두질 않아



엄마는 평생 ‘뚱뚱’과 싸워오셨다. 엄마와 ‘뚱뚱’이 싸운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싸워오신 것이다. 그 싸움은 아직 현재진행중이다.

분기별 행사마냥 평생 자라며 들었던 것 같다. 어떤 모임에 갔는데, 친구가, 또 어떤 집사님이, 마이 뚱뚱타, 살 좀 빼야겠다고 말하더라는 얘기들. 그런 얘기들을 하시고 나면 한 며칠은 상처받아 마음이 상해 계신다.

최근에는 한 동네 할머니께서 예전엔 ‘쪼매~ 뚱뚱하네’라고 하셨다가 근래에 보니 뚱뚱이 아니라 ‘띵띵~’하다고 했다며 속상해하셨다. 엄마껜 ‘뚱뚱’과 ‘띵띵’은 아주 달랐다.

“우야면 좋겠노? 스트레스 받아 죽겠다.”

엄마가 그러실 때마다 진심으로 생각한다. 엄마께 뚱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쁜거라고. 사람의 몸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 그걸 입 밖으로 직접 뱉는 것, 그게 상대방에게 기분이 나쁠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은 듯한 안일함, 배려 없음. 모두 다 나쁘다고.


키에 비해 조금 체중이 나가시는 편이지만 나보다, 내 동생보다 또 주변 내가 아는 사람 중 엄마는 가장 건강한 사람 중 한 명이시다. 어디 몸이 아프다하시는 얘기는 잘 못들으며 큰 것 같다. 지금은 그렇게 건강하시지만 그래도 비만이 건강에는 물론 좋지 않기에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엄마가 체중조절하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한다. 그러나 엄마께 뚱뚱하다고 말했던 사람들 중에 엄마의 건강이 걱정돼서 그렇게 말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진짜 걱정한다면 상처되는 말이 아닌 엄마가 진심으로 마음이 와닿는, 다른 방법으로 걱정해줬을테니까.




보통보다 조금 2~3키로 더 나가는 정도의 약간 통통 정도의 체중으로 거의 평생 살다, 임신 후 입덧 먹덧 임신중독끼 등 온갖 이벤트를 겪다 불어난 체중은 출산 후에도 잘 빠지진 않았다. 한 생명을 뱃 속에 열달을 품고 이제 막 출산을 했는데 쉽게 붓기가 빠지지 않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산후조리하는 게 우선이지 다이어트는 할 시기가 아니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조리원 퇴소 후 산후도우미 이모님을 2주 동안 모셔 지낸 적이 있었다. 한번은 그 이모님이 내게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셨다.

“애기 엄마~ 아빠랑 싸우면 이기제? 아빠보다 덩치가 더 크잖아~”

감정은 머리보다 늘 빨라 본능적으로 뭔가 이건 아니다 싶은 촉을 느끼지만 그 순간엔 기분이 나쁘다는 걸 머리로 캐치하는 건 항상 늦을 때가 많다. 촌스럽게 당황하다 어버버 네네? 아닌데요? 하다 끝날 때가 많고, 뒤늦게 집에 가서 들은 말을 곱씹으며 기분 나빠하곤 하는 나..(하...)한 번 당하면 두 번은 안 당해야 하는데 사람 기분 나쁘게 잘하는 사람들은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어쩜 그리 허를 찌르듯 공격을 날리는지. 이모님이 구령을 부르고 동작을 따라하는 산후체조 타임, 열심히 동작을 하고 있는 와중에 또 갑자기 이런 말을 하셨다. “엄마~ 살 더 찌면 안돼~ 그러면 남편이 안 좋아한대이.. 지금 초반에 잘 빼놔야돼~.” 이모님, 이게 말이에요, 방구에요. 내가 몸을 관리하는 기준이 왜 남편이어야해요. 함께 가진 자식 낳느라 살 찐걸로 안 좋아하니 뭐니 하는 그런 남편이라면 저도 싫어요. 그리고 이모님도 많이 과체중이잖아요. 이모님이 그런 말 하시면 1도 안 와닿아요. 2주 내내 남편분 욕하시는 거 듣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

그러나 결국 난 그 중 한 마디도 못했다.



아기가 태어나고 한 달 쯤 지났을 즈음 집에서 편하게 입을 실내복을 사러 혼자 마트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속옷 매장에 있는 파자마 바지가 괜찮은 게 눈에 들어와 요리조리 보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다가오며 내게 말했다. “출산 안 하셨죠? 임부 바지 찾으세요?”..... “저 출산했는데요..” .. 그러자 어찌할 바 몰라 당황하며 죄송하다 말하는 직원. 파자마 가격도 좀 있고 괜히 기분도 좀 그래서 그날은 바지를 사지 않고 그냥 갔다. 한 일주일 뒤쯤인가 또 마트 갈 일이 있어 들렀다가 또 그 매장을 지나가게 됐다. 또 그 바지가 눈에 밟혀 슬쩍 보고 있었는데 그때 그 직원이 다시 내게 다가왔다. “임신 중이시죠? 편하게 입을 옷 찾으세요?” 순간 데쟈뷰인 줄 알았다. 뭐지? 똑같은 상황, 똑같은 말, 그것도 듣는 사람 기분 나쁜 말을. 가까이 와 내 얼굴을 보더니 또 당황하며 아.. 며칠전에 혹시 왔던 손님이시죠~ 라고 말하며 쭈뼛거렸다.

실컷 출산하고 나왔는데 아직도 붓기가 빠지지 않은 내 배를 보고 임신하셨죠? 라는 말을 연거푸 두 번, 같은 사람에게 듣고 만 것이다.


옷을 팔면서 꼭 그런 얘기를 해야했을까. 확실치 않은 추측의 말을, 그것도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법한 말을 꼭 해야하나. 내가 임신도 출산도,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은 아가씨였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몇배로 더 기분이 나빠온다..


내가 남들이 흔히 말하는 ‘뚱뚱’한 사람이 되어보니 알 수 있었다.

‘아, 세상은 뚱뚱한 사람들을 가만히 두질 않는구나..!

‘엄마는 그런 말들을 평생 들으며 사시며 참 힘드셨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는 살을 빼고 싶고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말들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지는 않는다. 그런 말들의 영향이 있었을지 몰라도 그런 말들 ‘때문’은 아니다. 그런 말들 때문에 한다고 말하는 건, 그런 말들이 꼭 옳은 말들 같이 생각되어버려서 싫다. 나 자신을 위해서, 내 건강을 위해서 한다. 세상은 살 찐 이들을 가만히 두질 않지만 거기에 쉽게 말리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그런데 전 그렇지 않아요, 가볍게, 가뿐하게 말해주고 갈 길 가야지.

어떤 식으로든 사소한 것이라도 부정적인, 기운 빼는 말로 누군가를 변화시킬 순 없다. 더 중요한 건, 나의 몸은, 누군가의 판단의 대상도, 변화 촉구의 대상도 아니라는 것. 내 몸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나 자신 뿐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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