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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Apr 22. 2022

내가 반한 사람들, 내가 반한 순간들



이상하게 '도믿걸', '도믿남'들에게 많이 걸리던 때가 있었다. 도를 아냐고 묻는 이 뿐 아니라 어느 날은 성경책을 품에 안고 새벽기도를 가고 있는데 그 어둑어둑한 새벽에 낯선 남자가 말을 걸지를 않나, 친한 동생들과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웬 이상한 아저씨들이 같이 놀자고 하지를 않나.. 아무튼 그런 일들의 연속으로  당시 나는 수상하고 낯선 사람들에게 한참 학을 떼고 있던 중이었다. 누가 이상한 헛소리를 하며 다가오는 낌새만 보이면 손사래를 치며 홱 지나가버리기도 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친구와 약속이 있어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반갑게 친구와 만나 잠깐 인사하는 사이, 또 수상하고 조금은 행동이 이상해 보이는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와 뭐라고 뭐라고 말을 거는 거였다.



 어눌한 말, 어색한 몸짓으로 우리에게 뭔가 열심히 설명을 하는듯 하면서 손가락으로 자기 신발을 계속 가리켰다.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 웬 또 이상한 사람이 와서 이러네.'

그 분이 뭐라고 하는건지 알아들으려 노력하고픈 마음도 없었다. 그때였다. 옆에 있던 친구가 몸을 숙여 그 분의 신발끈을 묶어주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고맙다는 제스체를 취하며 인사를 하고 가셨다.
"신발끈이 풀렸는데 손이 불편하셨나봐"
아저씨가 간 후 친구가 내게 가볍게 말했다.

그때를 지금껏 그 친구를 알고 지내온 모습 중에서 가장 멋있는 순간으로 기억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상한 사람들한테 한창 데이던 일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사정을 살필 마음의 여유도 없던 나 대신 그 분의 필요를 알아채고 도움을 건넨 친구 얼굴이 그날따라 참 반짝였던 기억이 난다.




몇 년 전 작은 도서관에 근무할 때였다. 신간도서가 대량으로 들어와 책장 배치를 크게 다시 해야할 때가 있었다. 시립에서 임시인력요원들이 지원을 왔었다. 며칠 지내보니 그 사이에서도 기가 센 사람, 다른 이들을 휘두르는 사람, 은근히 소외되는 사람, 의기소침해있는 사람.. 신기하게 다 보였다.

계속 신간 작업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자주 어깨에 힘이 없어보이고 주로 혼자 지내곤 하는 한 분이 제일 다들 하기 싫어하는 구역을 맡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몇 번 동료들에게 얘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랑 여기 좀 같이 하자고. 그러자 그 중 힘의 주축으로 보이는 요원을 비롯해 몇명 사람들이 그 친구의 말을 비웃으며 약올리듯 싫다고 말하는 걸 듣게 되었다.

그걸 보며 저건 아닌데 싶었는데 선뜻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 실은 나설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였다.

"같이 도와줘야죠. 혼자 다 하기 힘들잖아요. 같이 가서 좀 해주세요..!"


조금은 떨리는 듯 단호하고, 힘있는 목소리.
평소 조용한 편에, 딱히 튀는 스타일도 아니었던, 한번씩 업무를 같이 하곤 했던 한 사서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의외로 사서 선생님의 말에 그분들은 "네 알겠습니다." 하고 가서 아무렇지 않게 가서 같이 작업을 했다. 용기 있는 그 한마디는 그날의 작업을 더 수월케, 소외받는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 만들었고 또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마음엔 어떤 작은 파장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선생님이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살면서 누군가 ' 이 사람 참 멋있네'하고 느끼는 순간은 그런 순간들이었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 편에서 용기있게 행동으로 묵묵히 돕는 사람들 .

 어쩌면 세상 살면서 젤 보람되고 의미있는 일은 그런 순간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쌓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한 행동은 아주 작은 행동일지 몰라도 그걸 받은 이에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일이 될지 모를테니.
내가 반한 이들의 반짝이는 순간들, 기억하고 싶고 나도,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생각한다.


21.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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