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이 난지 열흘이다. 새벽은 침묵했다. 팰리세이드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군인들이 출입증 패스가 있는 차량만 허가했다. 비치 가를 조깅하던 사람들은 간곳없고 소방서 차량만 수 십 대가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다. 파라다이스가 지옥이 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2025년 1월 7일 팰리세이드 해변에서 시작된 불은 주택들을 무자비하게 태우며 교회도 태웠다. 내가 자주 가던 갤슨 마켓이 훨훨 타는 것을 보았다. 작은 딸이 다니던 팰리세이드 하이 스쿨도 화염에 덮였을 것이다.
동네의 토메스칼 캐니언은 2마일 정도 산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로가 있어 주말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 나는 산 정상에서 하산하지만, 젊은이들은 말리부 캐니언과 산타모니카 캐니언으로 좀 더 긴 등산을 할 수 있게 이어져 있다.
정초에 폭죽으로 화재가 있어 소방대원이 진압했었다. 그곳의 불씨가 남아 있다가 강풍으로 번진 것이 화재의 시발점이라고 추정한다. 팰리세이드 산불은 동시다발적으로 대여섯 곳으로 확산되어 지금은 “L.A. 산불”이라 부른다.
불이 난 지 이틀 후에 산타모니카 북쪽의 집들도 대피명령이 떨어졌다. 불이 난 시간에 나는 별 뉴스 없이 실비치 은퇴 마을로 가고 있었다. 나흘 만에 돌아오니 딸이 귀중품으로 사진 액자와 내 아이패드를 대피시켜서 웃었다. 집에는 산불 재가 화단에 어지럽게 쌓여 식물이 생기를 잃었다.
내 인생에 3번의 화재 위험을 경험했기에, 위급 상태가 되면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을 알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산타아나 산불은 연중행사이다. 주로 여름이 끝나갈 즈음에 산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난다. 매년 수백 건이 일어나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주택가 가까이에서 시작하여 수백만 달러 이상의 고급 주택을 포함하여 1만여 채의 집들이 사라졌다.
오, 하느님, 지금 어디를 보고 계시나요?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죄에 응답하시는 건가요.
요즈음은 숲 속에 집을 지어 화재의 위험이 있지만, 내가 한국에 살 때는 주택가의 잦은 화재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온몸을 떨게 했다.
나의 첫 번째 불은 대구 피난살이 때다. 우리 가족은 판잣집에 살았다. 큰 여관집 담 옆에 딱 붙어 있었으니 무허가 판잣집이 아니었을까.
어느 겨울밤 여관집 반대편 자그마한 집에서 불이 났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불구경을 했다. 장사 밑천이었던 화장품을 담은 상자를 나르며, 어머니는 달달 떨었다. 소방차와 불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인 그곳에서, 어린 나는 빨간 불길 위로 검은 연기가 하늘에 채워지는 광경이 신비롭고 무서웠다. 우리가 부러워하던 집 몇 채를 태우고 나서야 불이 꺼졌다.
두 번째 경험은 46여 년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일어났다. 우리는 강남구 신사동 사거리에 위치한, 지금은 재건축된 공무원 아파트 3층에 살았다. 같은 층 앞집에는 젖먹이가 있는 20대 부부가 살았다. 스팀 난방이 거실에 있었지만, 파티를 하며 선선해서 석유난로를 거실에 피웠으리라. 우리 집도 동생과 조카들이 방문해서 떠들썩했다. 저녁을 먹다가 앞집의 외마디 소리에 문을 여니 집이 활활 타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을 안고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마당에서 자기 집이 타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는 집주인의 마음을 생각해 보라.
나는 울부짖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근처의 소방차가 요란하게 와서 불은 30분 만에 꺼진 것 같다. 앞집은 전소되었고, 내 집은 반만 탔다.
거실에 걸려있던 커다란 내 유화 작품은 불길을 빨아들이며 타버렸다. 수상을 한 몇 개의 작품 중 방안에 걸어 두었던 소품 한 점만 남기고 전소했다. 이재민이 된 우리 가족은 친척 집으로 흩어졌다. 내 작품들이 사라지고, 나는 그림 공부를 접었다.
세 번째는 아이들이 십 대가 되면서 산타모니카에서 퍼시픽 팰리세이드로 이사한 후에 일어났다. 태평양이 5분 거리에 있는 산등성이의 중산층 규모의 낡은 집을 사서 수리를 했다.
1995년쯤 말리부에서 대형 산불이 났다. 동네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불길을 바라보며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 불길은 우리 동네를 삼킬 듯 무섭게 치솟았다. 대피 명령은 떨어졌으나 집안에서 무엇을 차에 옮길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산타모니카에서 이웃이었던 동기 혜숙이가 남편과 함께 큰 밴을 몰고 왔다. 뉴스 속보를 듣고 온 부부는 내 귀중품을 알아서 싣고는 떠나갔다. 건너편 산 위에 위치한 구 게티 박물관을 지키려는 필사적 노력이었는지, 불길은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지 않는가.
그때는 팰리세이드 동네를 지켜 주었지만, 지금은 그 동네가 화재의 진원지가 되다 보니 주택 1000여 채가 타버려 폐허가 되었다. 우리 가족에는 추억이 있는 곳이지만, 이제 낯선 곳이 되었다.
닷새 동안 밤낮으로 보도하던 TV의 재난방송은 이제는 속보로 화재 진행 상황을 알리고 있다. 산 위의 저택을 지키려고 헬리콥터들이 물과 핑크빛 가스를 집 주위에 수시로 뿌려도, 불길은 바람이 이끌고 있었다.
불이 로스앤젤레스 도심으로 번지며 UCLA와 L.A. 의 명소 게티 박물관을 위협한다는 뉴스에 긴장했다. 미 전역의 소방차와 헬리콥터가 모여들었다. 인력 부족으로 죄수 수백 명을 방화 현장에 투입했다. 수돗물은 고갈되어 바닷물을 퍼 나르며 악마의 불꽃과 전쟁하고 있다. 국경 지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화재로 생긴 수만 명의 이재민이 좀 편하게 생활할 곳이 있을까. 내가 이재민이 되었을 때는 집수리를 하는 동안 친척들의 도움으로 이겨 냈다.
인간은 노력과 운에 따라서 많은 재산을 갖기도 하고 잃을 때도 있다. 자연재해는 누구나 당할 수 있어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재산은 내가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삶은 풍성하기도 하고 가난할 수도 있다. 나는 여러 번 화재의 위험을 겪었고, 너와 나의 재산이 재로 변하는 것도 보았다. 재산이라는 물질이 허망하다는 것을, 당해본 사람은 안다.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재민들도 불구덩이에서 생명을 구하고 터득한 것이 많을 것이다. 마음의 안정을 가지고 더 가치 있는 삶을 살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이재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아서 새날을 시발점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힘을 강하게 받을수록 그 반작용도 크다. 천사의 도시는 친환경 도시로 아름답게 재건될 것이다. 화재로 도시의 한쪽이 폐허가 되었지만, 로스앤젤레스 시민의 삶을 황폐하게 할 수는 없다. 불타지 않는 동네가 될 수 있도록 연구할 것이다.
우리는 어느 곳에도 메이지 말고 인생의 종착역을 향하여 아름답게 걸으면 된다.
나도 그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걸어가리라.
비는 좋은 때를 알고 내린다는데, 지금이 그때라야 하지 않는가. 그 비가 한 시간만 내려주기를, 하늘에 기도한다. 오늘부터 바람이 잠잠해지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글쓴이 소개
필명: 국화 리
숙명여고와 서울교육대학 졸업.
1982년 미주 로스앤젤레스로 이민
한의사로 활동(산타모니카) 한의학 박사
2006년 미주『문학세계』로 등단
2010년 서울 『한국산문』으로 재등단
2025년 수필집 『사랑을 말하고 싶은 날』출간
미주문인협회원,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
현재 로스앤젤레스 피오피코 도서관 후원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