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실비치 아파트에 왔다. 싱글이 된 엄마가 어둡게 지낼까 하여 자주 온다.
그날은 월요일이 휴일이라 하루 더 머물렀다. 우리는 주로 밀린 이야기와 영화를 보며 하룻밤을 보내곤 했다.
새 탁구 파트너가 생겼다며 나는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늘어놓았다.
조용히 듣던 딸이 “엄마, ‘핑퐁 데이트’하는구나”라고 깔깔대며 뒤로 넘어지려 했다.
덩달아 웃긴 했지만, 딸의 입에서 그런 코미디 멘트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파트너가 아파트 입구로 데리러 오가며 외진 탁구장에서 탁구를 쳤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재수 없으면 “모니카가 유부남과 바람났대.”라고 아파트 단지가 들썩일 수도 있겠다.
탁구는 속도가 붙어 달려가기만 하는데. 파트너가 괜찮아서 탁구 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자랑을 한 것은 딸이 처음이기도 했다.
“일은 났구먼”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1년 이상 탁구 개인지도를 받았으나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코치와 칠 때는 잘 받을 수 있도록 공을 보내주어 긴 호흡으로 칠 수 있었다.
공치는 사람들은 기술보다 복식 게임을 하며 운동으로 즐겼다.
나는 기본기가 튼튼해질 때까지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선수들이 게임 전에 길게 치는 랠리를 머릿속에 두고 흉내 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C급의 실력도 안 되는 내가 늘 몇 명 안 되는 A급 파트너를 찾으니 누가 상대해 주겠는가. 그들이 한 번씩 예의로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파트너가 마음에 안 들면 나는 기계에서 나오는 공을 치며 혼자 연습했다.
어느 날, A급은 안 되지만 실력을 갖춘 남자 파트너를 만났다.
그는 아파트 회원의 초청으로 외부에서 들어와서 A급들과 복식 시합을 즐겼다.
그는 내 수준의 사람들과 자주 파트너가 되어주기도 하고 한 수씩 가르쳐 주어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여름날 오후, 그는 기계 앞에서 혼신을 다하는 나를 보고 키워주겠다며 스케줄을 잡는 것이 아닌가.
오전에 A급들과 게임을 마치고, 오후엔 나의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한 시간 이상 공을 길게 치면 탁구장에서 구경꾼도 생긴다.
인기 있는 그를 잡고 사람들의 눈총도 좀 받으며 두 달 정도 함께 쳤다.
어느 날 파트너는 단지 밖의 탁구장에서 마음 놓고 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도 눈치 보며 치는 것이 걸렸다.
그가 아는 근처 탁구장에 등록하고 우리 둘은 두 달 정도 열을 올리며 연습을 했다.
실력도 늘고 재미도 무르익어만 갔다.
핑퐁 데이트! 딸이 던진 이 단어는 따뜻하게 나에게 안겼다.
하양처럼 순수함만 느껴졌다. 깃털처럼 가볍고 작은 공을 날리며 우리는 공에만 눈을 맞췄다.
상대가 가볍게 날리면 나도 그의 리듬을 따랐다. 거친 공이 날아오면 몸의 촉각을 곤두세웠다.
공을 칠 때는 탁구채의 방향과 공만을 주시한다.
우리는 공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공만으로 상대의 그날 온도를 알 수도 있다.
그는 나의 능력에 맞추어 기분을 한껏 올려 주기도 하고 골탕을 먹이기도 했다.
공으로 말하며 그와 데이트를 한 셈이다. 수십억의 세포가 춤을 추었다.
탁구장의 사람들도 구경하며 응원해 주어 우리는 땀을 비처럼 쏟으며 공을 쳤다.
그전에 댄스를 추며 가졌던 열정이 살아나며 나에게 활력을 주었다.
끝나면 근처 식당에서 내가 점심을 대접했다. 그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공무원으로 퇴직해서 연금도 괜찮은 액수를 받는다며 자랑했다.
아내는 미장원 운영을 정리 중이라며 사진도 보여주었다.
자기 집 정원에서 수확한 베이비 오렌지도 한 봉지씩 갖다 주고 꽃 화분을 들고 오기도 했다. 은퇴 후 그는 탁구 치는 재미로 하루를 보내는 것 같았다.
딸에게 탁구 데이트를 들킨 뒤에 함께 칠 친구를 찾아보았다.
우선 서울에서 방문 온 친구에게 함께 치자고 했다.
셋이 모일 때는 운동을 마치고 점심 식사도 마음 놓고 했다.
그는 여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친구도 좋아했다.
나보다 한두 살 아래였던 그는 내가 누나 같기도 하고
파트너를 못 찾아서 기계에서 치는 나를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
입술을 포갠 사이도 아닌데 딸까지 핑퐁 데이트로 생각하니 일은 났다.
꼬리가 밟혀 사람들에게 땅콩 씹는 맛을 주기 전에 정리를 해야 하는데….
그는 나를 여자로 좋아했을까.
그는 나를 위해 뭐든지 도와주고 싶어 했다.
새로 산 전화기가 작동이 안 돼서 급히 아이폰 매장을 찾고 있을 때 장소를 찾아주었다.
10마일 떨어진 곳까지 자기 차에 태워 데리고 갔다.
세리토스 지역의 대형 백화점 안에 매장이 있었다.
예약을 하지 않아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둘은 백화점 안을 활보하며 무슨 얘기에 빠졌던 것 같다.
어느 곳에서 우리 둘을 빤히 쳐다보는 남자를 만났다.
낯이 익었다. 옛날 교인인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정숙 씨가 남자하고 다니던데”라는 말을 던질 수도 있겠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탁구를 함께 치던 골프광 친구가 말했다.
“탁구 치는 폼이 골프도 잘 치겠는데?” 하며 골프 연습장으로 날 데려갔다.
그녀는 나를 자기의 골프 파트너로 키우고 싶어 했다.
그녀는 싱글 실력으로 나를 지도해 주었다.
멀리 거리를 내기 위해 허리를 돌리는 힘으로 치라고 했다.
탁구의 미련을 날리기 위해 집중해서 골프를 쳤다.
탁구 파트너에게 골프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도 오래전에 골프 치던 때가 있었다며 내가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싱글 여자가 파트너를 갖는 것은 어려웠다.
전에 볼륨 댄스도 혼자 추는 춤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았던가.
아파트에서 가끔 남자들과 탁구를 치면 부인들에게 눈치가 보여서 치지 않았다.
골프는 혼자 연습할 수도 있고 네 명이 조를 이루어 플레이를 하니 크게 문제가 없다.
몇 주 후에 파트너에게 골프에 집중하고 탁구는 그만치고 싶다고 말했다.
“당신은 나의 최고 파트너로 남을 거라며 기다리는 사람들을 도와주라.” 했다.
탁구 파트너의 아내가 떠올랐다. 그녀에게 귓속말을 했다.
“당신 남편은 나에게 탁구 치는 재미를 주었어요. 고맙고 다정한 파트너였어요.”
탁구장에 발길을 끊어 버렸다.
‘핑퐁 데이트’는 그렇게 아쉬운 막을 내렸다.
글쓴이 소개
필명: 국화 리
숙명여고와 서울교육대학 졸업.
1982년 미주 로스앤젤레스로 이민
한의사로 활동(산타모니카) 한의학 박사
2006년 미주『문학세계』로 등단
2010년 서울 『한국산문』으로 재등단
2025년 수필집 『사랑을 말하고 싶은 날』출간
미주문인협회원,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
현재 로스앤젤레스 피오피코 도서관 후원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