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알래스카 여행 <빙하의 나라로 들어서다>(1부)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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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여행

-빙하의 나라로 들어서다-



여행을 시작하며


태양이 작열하던 한여름, 인기 씨 부부의 맏아들이 장가를 갔다.

캘리포니아의 맨해튼 비치, 작은 호텔의 야외 식장에는 멀리 스페인에 거주하는 누이와 뉴욕에서 온 동생 부부가 함께하여, 오랜만에 각지에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였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이라 북극으로 달음질치고 싶었을까.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신랑아버지, 인기 씨는 우리를 빙하의 왕국, 알래스카 초대권을 내놓았다.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수년 전에는 스페인 여행에서 열 명이 넘는 가족이 모여 어머니의 사랑이었던 이모님의 묘소를 찾았고, 태권도 사범으로 스페인 왕실까지 매료시켰던 오빠의 빛나는 삶의 궤적을 더듬었다. 이제는 그는 저 세상 사람이 되어 함께할 수 없지만, 그때 못다 한 가족의 이야기는 알래스카의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우리의 여정은 앵커리지에서부터 시작된다. 박물관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투어 버스를 타고 도시의 풍경을 눈에 담을 것이다. 발데즈 항으로 가서 연어의 산란지를 목격할 것이다. 콜럼비아 대빙하와 마타누스카 빙하, 그리고 엑시트(Exit) 빙하까지, 북극 탐험가처럼 얼음의 땅을 누비리라. 또한, 매킨리 산 근처에 올라 만년설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마주하고, 경쾌한 개 썰매를 타는 낭만적인 계획도 세웠다.


1부,


앵커리지, 역사와 마주하다


이곳에 첫발을 들이자 먼저 인사를 건네야 할 곳이 있단다.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공원에는 한 탐험가의 동상이 서 있었다. 1778년, 이곳에 처음 닻을 내렸던 영국의 항해사, 제임스 쿡(Captain James Cook)이다. 그는 뉴질랜드와 하와이를 발견하고, 이윽고 알래스카에 이르러 대자연의 품에 영원히 잠들었다.


이곳 박물관에는 알래스카의 오랜 역사와 태고의 자연환경을 담고 있는 사진들과 유물들로 가득했다. 마치 그 시대와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듯했고, 토착 원주민들의 소박하고 강인했던 생활상이 가슴을 울렸다. 그들의 집과 의복, 그리고 거친 물살을 갈랐던 카약(Kayaks), 박제된 야생동물들을 마주하며, 이 추운 땅에서 사냥과 어로로 삶을 일구어낸 야성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꼈다.


1867년, 슈워드 국무장관이 러시아로부터 이 불모의 땅을 매입했을 때, 알래스카의 싸늘한 기류처럼 정계의 반응 또한 냉담했다. 그는 어리석은 거래를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 국토의 5분의 1, 한반도의 열일곱 배에 달하는 이 거대한 땅은 30여 년 후, 기름이 샘솟고 지하자원이 넘쳐나는 '황금의 땅'으로 변했다. 슈워드는 마침내 명예를 회복하여 곳곳에 그의 이름을 새겼다. 슈워드도시, 슈워드 항구, 슈워드 기차 등에서 그의 이름은 자랑이었다.

미국의 49번째 알래스카!

그 거대한 빙하에서는 하얀색 산소가 뿜어 나와 초록색 생명으로 물들 것이다.


발데즈 항: 연어의 고향에서


앵커리지에서 발데즈 항으로 향하는 여정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차창 밖으로 쉴 새 없이 스쳐 가는 웅장한 자연경관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협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빙하가루와 산의 흙이 섞여 마치 시멘트를 풀어놓은 듯 탁한 빛깔을 띠었다. 주변은 울창한 숲이 감싸고 있었고, 물줄기는 그 숲을 가르며 힘차게 흘러내렸다.

도중에 들른 파머 농장에서는 한 아름이 넘는 거대한 양배추가 자라는 진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비옥한 땅과 잦은 비, 그리고 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에 풍부하게 담긴 영양소 덕분에 채소들은 제 기량껏 마음껏 자라고 있었다.

해발 2,800피트의 톰슨 고개(Thompson Pass)를 넘을 때는 웅장한 폭포와 수많은 산봉우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두 시간여를 산자락을 오르내리며 거대한 자연의 품속에 안긴 듯 평온함을 느꼈다.

7시간 만에 도착한 발데즈 항에서는 바닷바람을 타고 진한 생선 냄새가 진동했다. 고기잡이 어선들이 정박하고 연어 부화장이 자리 잡은 이곳이 바로 '생명의 땅'임을 알리는 근원의 향기이리라.

물가에는 알을 낳는 고귀한 임무를 마치고 생을 다한 연어들이 허옇게 널브러져 있었다. 하얀 갈매기들은 널브러진 그들의 눈을 쪼아 먹기 위해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흰 날갯짓이 바닷가에 그려내는 이 생생한 풍경은 장엄하면서도 애처로운 생명의 순환을 보여주었다.

태평양의 거친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 몇 달에 걸친 대 장정에서 마침내 그들이 태어난 곳에 도착한다. 드넓은 산란장에 도착해 알을 낳은 후, 그들은 아낌없이 생을 다한다. 산고의 진통을 이겨내고 수많은 새끼를 낳았으나 더 이상 남아는 기력은 없었을 것이다. 조물주는 왜 연어에게 태어난 곳에서 죽으라 명했을까. 부화한 새끼들은 어미의 시체를 뒤로하고 살아서 거친 바다로 나아가야 했다.


해 질 녘이 되자, 숲 속에서 시커먼 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수백의 눈동자가 그의 우아한 거동에 일제히 집중되었다. 덩치가 큰 곰이지만 민첩하고 재롱도 부려 인기가 있다. 곰은 여유 있게 걸어 나와 바닷가로 내려갔다. 그리고 널브러진 죽은 연어를 여유롭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이후 출출해진 곰들이 여럿 내려와 널려있는 먹이를 평화롭게 나누었다. 싸움이나 피 흘림 없이 얻은 먹이 덕분일까, 이곳의 곰들은 공격적인 기색 없이 순박해 보였다. 하얀 갈매기 떼들은 곰이 먹다 버린 연어 조각들을 부지런히 쪼아 먹고 날랐다. 그 모습이 붉은 저녁노을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수백 척의 배가 정박된 선착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작은 어선들에서 막 내린 어부들이 싱싱한 물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아이 키만 한 거대한 광어를 자랑스레 걸어 놓은 아마추어 어부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는 오후에 여섯 마리를 낚는 쾌거를 올렸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귀한 광어횟감들 아닌가. 그들은 토막을 내서 스테이크로 구워먹는단다


저 멀리 바다에는 열 개 남짓한 흰색 원형의 원유 탱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 산맥 너머 천 킬로미터 이상의 거대한 파이프라인을 따라 도착한 원유가 이곳에 저장된다. 그것은 유조선에 실려 시애틀 정유공장으로 향한다. 매장량은 천문학적인 수치에 달하지만, 미국은 다음 세대를 위해 일정량만을 생산하고 있단다. 미국은 자원의 천국으로 한반도를 생각하며 부럽기만 했다.


발데즈 항. 인구 오천 명의 작은 어촌이지만 '리틀 스위스'라 불린다. 해가 질 때까지 떠나지 못하고 부둣가에 서서 눈앞의 풍경들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았다. 만약 평화로운 곳을 찾는 이가 있다면, 곰과 연어, 하얀 갈매기들의 몸짓 속에 생명의 순환과 평온이 내려앉은 이곳을 소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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