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알래스카 여행 <빙하의 나라로 들어서다>(2부)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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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만년설의 푸른 장막, 흐르는 시간의 표상


알래스카는 십만 개도 넘는 빙하를 품고 있다. 이름이 붙은 것만도 육백여 개. 이 얼음의 천국에서 우리 생에 한 장면으로 남을 세 곳을 찾았다.


1. 콜럼비아 대빙하, 거대한 탄식


발데즈 항을 떠나 콜럼비아 대빙하로 향하는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배는 멀리 보이는 산맥을 향해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드넓은 바다에서 풍겨드는 비릿한 냄새가 바닷속세상을 엿보게 했다. 거대한 고래의 그림자가 물속을 헤엄치 여정을 환영해 주었고 물개와 연어들도 가끔 솟아올랐다.


앞을 막고 있는 산이 가까워질수록 바다는 신비로운 무늬를 새겼다. 여러 모양의 얼음 조각들이 수면 위에 떠다녔다. 어떤 흰 바윗덩이 위에는 바다사자가 왕좌에 앉은 듯 태양을 즐기고 있었다.

해안가 산 아래에는 이백여 마리의 바다사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장난치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도 우리의 시선을 보았는지 유람선을 바라보며 환영의 몸짓을 보여주었다.


마침내, 수만 년의 세월이 빚어낸 거대한 빙벽을 마주했다. 눈부시게 하얗고도 깊은 푸른빛의 빙벽이 우리 앞을 장엄하게 가로막자, 한여름의 더위가 일순간 밀려나갔다. 이 숨 막힐 듯한 절경 앞에서 승객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고 소리는 화살처럼 빙벽에 수없이 박혔다. 그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때, 빙벽은 쩍 갈라지며 작은 얼음덩이들이 바다로 빠져 들었다. 무너져 내릴 듯 아슬하게 붙어있는 빙벽은 뒤를 이어온 누군가는 장관을 보게 되리라. 기후 온난화로 빙벽은 크레바스가 생기며 자주 무너져 내린다. 내 앞에서 부서져 내리는 장관을 보지 못한 것을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더 이상 산자락 같은 절벽 같은 빙벽을 볼 수 없는 날이 올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뱃머리를 돌려 유람선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다. 마음에 무거운 덩이를 달고 떠나고 있었다. 선실에 앉아있는 우리 가족들도 나와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애써 기분전환을 하며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얘기를 펼쳐냈다. 험난한 고생을 이기고 자수성가한 인기 씨 부부는 우리 가족의 자랑이다. 오직 성실한 노동과 자녀 교육만이 자신이 아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겸손히 말했다. 그들은 낯선 땅을 건너온 수많은 이민자의 모범이었다.


2. 마타누스카 빙하, 얼음 조각가의 작품들


아침부터 하늘은 잿빛으로 무거웠다. 빗줄기가 창문을 세차게 때리고 있어 긴장했다. 하지만, 알래스카의 날씨는 변덕스럽다고 해서 마음이 풀렸다.

육지 빙하의 심장으로 불리는 마타누스카 빙하 트래킹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절한 기도가 닿았나 보다. 소나기는 지나가고 햇살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우리는 나누어 우비를 입고 얼음 위를 걸었다. 북극 탐험을 하는 심정으로 조심조심 빙판길을 걸었다. 만년의 신비를 끌어안은 거대한 얼음 절벽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군데군데 녹아내린 물길은 균열을 만들며, 마치 자연이 빚어낸 길고 거대한 미완의 조각 작품처럼 보였다. 인간에게 허락된 태초의 예술품 같았다.

얼음 동산에 오르니 탐험대장이 된 것처럼 우쭐해졌다. 두 팔을 치켜세우고 "북극 탐험 성공!"을 외치며 인증 사진을 찍는 해프닝은 웃음을 선사했다.

돌아 내려오는 길은 미끄러워 아슬아슬했지만, 미지의 탐험에 성공하여 깃발을 꽂고 귀환하는 듯한 벅찬 기분이었다.


3. 엑시트(Exit) 빙하, 사라지는 풍경


슈워드행 기차에 올라, 세계 최대의 산 빙하 엑시트를 향했다.

기차는 협곡 사이를 4시간 넘게 달렸다. 창밖으로 흘러내리는 폭포와 계곡의 물줄기가 바다로 이어졌고, 그 위를 따라 카메라 셔터가 쉴 새 없이 터졌다. 군데군데 흰 띠를 두른 산맥은 빙하의 행렬처럼 이어졌다.


빙하를 바라보며 우주의 대자연이 주는 웅장함과 섬세함 앞에 고개가 숙여질 뿐이었다. 엑시트 빙하를 향해 2마일을 걸어 산 중턱까지 갔다. 흘러내리듯 스키장 같은 빙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전망이 좋은 평평한 곳에 모여 올라온 빙하를 내려다보았다. 드넓은 대지위로 흰색 빙하가 끝을 모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하얀 꼬리 동물 같았다. 한동안 우리는 사진에 담아 두려고 여러 방향으로 셔터를 눌렀다.


하산길에서 들은 말이 마음에 남았다. 해마다 측정선을 옮기며 빙하의 후퇴를 기록해 둔다고 했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는 한, 엑시트 빙하 역시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알래스카는 젊은 산에 속해서 지금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앞으로 산이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빙하가 줄어드는 속도는 늦쳐지길 간절히 바랐다.



여행을 마치며 - 창공에서 맥킨리 산 주위를


앵커리지로 돌아왔을 때, 태양은 찬란했지만 산 아래엔 하얀 구름이 넓게 깔려 있었다. 오늘은 미국의 최고봉, 맥킨리 산 주변을 도는 경비행기에 오르는 날이다.

6인용 경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맥킨리 산 주변을 저공비행하며 창공을 날았다.

3천 피트 상공에서 바라본 알래스카는 말 그대로 대지의 신비였다. 만년설과 빙하는 거대한 활강로처럼 이어지고, 구름은 산봉우리를 감싸 안은 채 쉼 없이 흘러갔다.

그곳은 고(故) 고상돈 산악인이 생을 마감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한 봉우리다. 눈 덮인 산 중턱 어딘가에서, 그는 여전히 눈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듯했다.


끝내 최고봉은 보지 못했지만, 하얀 침묵 속에서 나는 오히려 많은 것을 보았다. 인간의 실체가 사라질 만큼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남는 것은 경건과 엄숙뿐이었다.

비행 중 잠시 어지러웠지만, 몸이 불편한 스페인 언니가 "오늘이 내 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야."라고 속삭였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잘 걷지도 못하는 그녀가 하늘을 훨훨 날았으니 말이다.


알래스카여행에서 우리는 두 발로 걷고, 버스와 기차도 탔다. 배도 타고 하늘도 날며 우리는 곳곳을 누볐다. 이보다 완전한 여정이 또 있을까.


인기 가족, 스페인 언니, 그리고 뉴욕의 길자부부, 우리는 이민자라는 이름 아래, 같은 시대를 건너온 동지들이다. 세상이 던진 불운을 행운으로 바꾸려고 낯선 땅에서 서로에게 뿌리가 되어 주었다. 삶의 사계절이 몰아친 풍파 속에서도 끝내 한 그루의 나무처럼 단단해졌다. 그 나무에는 어느덧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낙엽이 지고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시간들은 빛났던 인생의 순간이었다. 고맙고, 감사하고, 벅차서 말없이 눈을 감았다.

알래스카의 대자연은 상처 입은 우리를, 오래 전의 어머니처럼 묵묵히, 그리고 넉넉한 품이 되었다. 우리의 만남은 삶의 눈물을 닦아 치유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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