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순례 길
오래전부터 내 마음의 지도 북쪽에 자리를 잡은 이름이 있었다. 실향의 핏줄 때문일까. 그 이름은 바로 ‘백두산’이었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수없이 불렀던 애국가. 그러나 그 누구도 “백두산에 가봤다”라고 말하던 사람은 없었다. 언젠가부터 애국가의 첫 구절을 부를 때마다 가슴 한쪽이 저릿해졌다. 민족정신의 근원이라는 그 산을 끝내 품을 수 없다는 분단의 현실이 마음을 눌렀다. 사진 속의 백두산은 우리가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라, 늘 가슴 시린 그리움의 장소였다.
미국 이민 후 문인들과 교류하던 어느 날, 새로운 인연이 닿았다. 연변의 한민족 문학 교류를 위해 중국에 간다는 소식이었다. 행사가 끝나면 ‘선구자’의 숨결이 살아 있는 용정을 지나 백두산으로 향하는 일정.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지 모른다는 간절함이 밀려왔다.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찾은 늦여름의 백두산 순례는, 그렇게 운명처럼 내게로 왔다.
용정의 노래
베이징 공항에 내렸을 때, 대륙의 문명과 역사가 공기를 묵직하게 적시고 있었다. 나의 첫 중국 방문이었다. 천안문과 자금성을 보며, 천 년 동안 왜세의 침략을 견뎌내고 결국 살아남은 우리 겨레의 기개가 새삼 자랑스러웠다.
곧바로 연길행 비행기에 올라, 우리 민족의 흔적이 깊게 배어 있는 만주의 땅으로 향했다.
독립의 꿈을 품고 이주해 온 백성들이 피와 땀으로 살아낸 용정. 그곳은 노래 〈선구자〉가 황량한 들판 위에 울리던 자리였다.
그리고 용정은 윤동주의 고향이었다.
〈서시〉의 낮은 숨결과 〈별 헤는 밤〉의 운율이 바람결처럼 스며왔다. 〈또 다른 고향〉과 〈쉽게 쓰여진 시〉가 이민자의 마음을 적셨다.
나라 잃은 설움을 시로 다 쓰지 못하고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 고귀한 영혼, 그의 넋은 지금도 용정의 하늘에 푸른 별로 떠 있는 듯했다.
두만강의 눈물과 염원
며칠 동안 연변에서 조선족 문인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그들과 함께 냉면을 먹고 노래방에서 웃으며 어울렸다. 6·25 전에는 남한보다 더 잘살아 북한을 도왔다던 이들. 연변은 한국의 작은 시골처럼 순박한 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의 절실한 문학 혼은, 언젠가 디아스포라 문학을 이곳에서 다시 피워낼 것 같은 예감을 주었다.
도문시에 이르자 두만강이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는 도문교 중간 지점까지 걸어가서 멈춨다.
북한과 국경선이었다
강폭은 백여 미터 남짓. 수영을 할 줄 안다면 어렵지 않게 건널 것 같은 좁은 물길.
그곳에서 얼굴이 까맣고 누더기 옷을 입은 열 살 남짓의 아이들이 우리에게 달라붙었다.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는 꽃제비들이었다.
교실 대신 국경의 냉혹한 현실을 배워야 하는 아이들에게, 일행은 조심스레 1달러 지폐를 쥐여주었다. 그들의 고단한 삶이 내 핏줄 속으로 스며들 듯 아팠다.
달빛에 의지해 밤마다 강을 건너는 탈북자들. 분단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 현실을 바라만 보아야 할까.
여정이 깊어질수록 내 마음도 상처를 입었다. 육신도 지쳐 식욕을 잃었다.
그러나 오늘은 드디어, 평생 꿈꾸어 온 백두산 천지를 만나는 날이었다.
천지의 약속
백두산 천지는 기상 변화가 심해 맑은 모습 보기 어렵다고 했다. 사람들은 청명한 천지를 보기 위해 여러 번 오른단다.
나는 전날부터 천지신명과 하느님, 하늘님께 마음 깊은 곳의 소원을 기도했다.
버스는 산을 향해 높이 올랐다. 장백산 정상은 북한과 맞닿아 있어, 건너편으로 내 조국의 산줄기가 이어진다는 곳.
몸은 여전히 기운이 없었지만, 정신만은 천지의 부름을 받은 듯 맑았다.
소형버스는 덜컹이며 굽이진 산길을 돌았다. 9월 초의 바람은 싸늘했고 냉기가 잠바 속으로 스며들었다.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바람은 몸을 날려 보낼 듯 거셌다.
회색 구름 아래, 거대한 돌그릇 같은 칼데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짙푸른 물이 고요하게 담겨 있었고, 그곳엔 신령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런데 금세 검은 구름이 몰려와 천지를 삼켜버렸다.
우리는 암흑 같은 장막 속에 갇혀 추위에 떨었다. 마음속 기도가 닿지 않은 듯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세찬 바람이 울부짖으며 구름을 밀어내자,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구름이 걷히며 드러난 천지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푸르고 맑은 수면은 빛을 머금고 색을 바꾸었고, 둘레는 16개의 봉우리가 조각처럼 둘러서 있었다. 그중 가장 높은 장군봉은 북한 땅에 속해 있었다.
최대 수심 약 384m, 평균 200m가 넘는 깊이. 천지의 검푸른 물결이 햇볕을 받으며 부서졌다.
곳곳에서 온천이 분출되고 있어 살아 있는 화산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산길의 온천 지대에서는 뜨거운 물에 옥수수와 계란을 삶아 팔고 있었고, 우리는 유황 냄새 풍기는 노란 달걀을 만병통치약처럼 맛보았다.
천지물은 흘러 장백폭포가 되고, 동쪽으로는 두만강, 서쪽으로는 압록강을 만들어 세상을 향해 흘러갔다.
신령한 공기와 물을 온몸에 채우며 사진을 찍었다.
그 장면은 훗날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김정은 위원장이 함께 천지에 선 사진을 보며 다시 떠올랐다. 선친의 고향이 북한이라던 문 대통령의 감격을 헤아리며, 나는 그보다 20여 년 먼저 중국 쪽에서 천지를 바라본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본다’는 말처럼, 천지는 신비로운 곳이었다.
수천만의 염원을 대신해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은 내 인생의 크나큰 행운이었다.
그날 천지의 바람은 내 마음속 오래된 한과 그리움을 모두 씻어내듯 불어왔다.
그리고 나는 장대한 하나의 이름을 다시 되뇌었다.
“백.두.산.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 이름은 지금도 내 마음의 북쪽에 서서, 민족을 일깨우는 신령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