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야 가라, 외치는 폭포
국화 리
올여름도 유난히 더웠다. 나이의 덧셈이 거듭될수록 더위는 점점 견디기 힘들어진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을 찾아 떠나고 싶던 찰나, 뉴욕 사는 동생이 말했다.
“정숙 언니, 아들 결혼식이 끝나면 며칠 가족여행 다녀와요. 뉴욕 근교로요.”
이민 와서도 늘 큰 행사가 있을 때만 오가던 가족. 이번엔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뉴욕 시내 관광버스에 올라, 낯설도록 익숙한 도시를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민 초기, 우리 가족이 처음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했던 일이 떠올랐다. 다음 해엔 미국의 심장부로 와서 백악관과 자유의 여신상, 뉴욕의 미술관, 워싱턴의 박물관들을 둘러보았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한 가족이 지구 반대편 문명 앞에서 느꼈던 문화 충격. 그때 나는 이 낯선 문화 속에서 과연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두려웠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마주한 도시의 풍경은 달라 보였다.
타임스스퀘어의 전광판은 여전히 눈부셨다. 세계의 자본이 불빛 속을 흐르듯 번쩍이고, 그 속엔 삼성과 LG, 그리고 요즘은 BTS와 김치 광고까지 섞여 있다. 한류가 미국의 심장에 뿌리내린 듯 어깨가 우쭐해지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세계의 자본이 경쟁하는 그 속에는 여전한 활기와 소음이 출렁였다.
센트럴파크의 녹음은 한결 짙어졌고, 그 안을 뛰노는 아이들과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정답다.
동생이 운영하는 작은 상점을 들렀다가 근처를 함께 걸었다. 그녀는 빌딩 몇 채를 가리키며 말했다.
“언니, 이것도, 저것도 중국 자본이야.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돈이 뉴욕 부동산을 휩쓸며 도시 풍경을 바꾸고 있어.”
순간, ‘중국엔 남한 인구만큼의 갑부가 있다’ 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역사는 언제나 경제와 권력의 흐름 속에서 움직인다. 그 한복판에서 이민자들은 실핏줄처럼 흘러가며 제 자리를 만들어간다. 나 또한 그 속의 한 가느다란 흐름으로, 제 역할을 다해왔다.
하늘 강, 천섬의 고요에서
이튿날 아침, 우리는 한국인 관광버스에 올랐다.
메모리얼 데이 연휴라 버스는 이민자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미국에 살아도 한국 사람끼리가 편한 법, 주소는 달라졌어도 마음의 고향은 여전히 한반도였다.
조상이 이주해 온 이탈리아나 프랑스계 사람들도 다르지 않으리라.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각자 뿌리를 품은 사람들이 거대한 삶의 지평선 위에서 조심스레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곳 아닐까.
뉴욕을 떠난 지 여섯 시간, 버스는 세인트로렌스 강가의 천섬(Thousand Islands)에 닿았다.
강 위로 천 개의 섬이 떠 있다 하여 붙은 이름. 유람선은 잔잔한 물결을 가르며 섬 사이를 누볐다. 숲 사이로 붉은 지붕의 별장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섬마다 집 한 채뿐인 곳도 많았다. 집집마다 보트가 정박되어 있었고, 큰 요트들도 이따금 보였다. 10미터 남짓한 다리를 건너면 곧 캐나다다. 배는 국경 사이를 조용히 나아갔다.
섬에는 상점이 없어 상인들이 배를 타고 생필품을 배달한다 했다. 그림 속 풍경 같은 별장들은 대부분 여름 한 철 머무는 부유층의 피서지라 했다. 캐나다의 갑부들이 이곳에 별장을 많이 가지고 있다.
요트를 타고, 낚시를 하고, 햇살을 만끽하는 그들의 삶을 바라보니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동화 속에 들어온 듯 신기하고 평화로웠다.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삶의 찌꺼기를 씻어내고, 그 맑은 기운을 가슴에 담았다.
‘내 마음이 메말라갈 때, 천섬의 요정들에게 말을 걸리라.
짙푸른 숲의 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밤하늘의 별빛으로 무늬를 새기리라.’
“나이야 가라” 폭포의 함성
천섬을 뒤로하고 버스는 서쪽으로 향했다. 멀리서부터 공기를 흔드는 굉음이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거세져 마침내 거대한 물기둥이 시야를 채웠다.
사진으로만 보던 장면, 나이아가라 폭포였다.
하얀 포말이 절벽 아래로 쉼 없이 쏟아지고, 수면 위엔 안개 같은 물보라가 피어올랐다.
내가 사는 곳 가까이의 요세미티 폭포도 자주 보았지만, 이곳의 물줄기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요세미티의 폭포가 산의 고요를 깨우는 목탁소리라면,
나이아가라는 대륙이 큰 숨을 쉬는 심장의 박동 같았다.
나이아가라는 미국과 캐나다의 경계에 서 있다. 높이는 같지만 폭은 캐나다 쪽이 두 배 넓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캐나다 쪽 전망을 더 선호한다.
전망대에는 인파가 가득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폭포의 굉음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노란 우비를 입은 사람들은 비 속의 아이들처럼 환호했다.
폭포는 매초 7,000톤의 물을 쏟아낸다지만, 그 수치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이 거대한 숨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점에 불과한지만 느껴질 뿐이었다.
우리도 빨간 우비를 입고 유람선에 올랐다. 배가 움직이자마자 물보라가 사정없이 몰아쳤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웅크렸지만, 이내 물기둥이 우리를 덮쳤다.
두려움과 쾌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폭포 가까이 다가서자 물은 마치 침략하듯 달려들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배는 요동쳤고, 파도와 폭포 소리,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 느낀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환희였다.
잠시 후 배가 돌아 나올 때, 서로의 젖은 몰골을 보며 웃음이 터졌다.
남동생이 외쳤다.
“우리 비싼 돈 주고 물폭탄 맞았네!”
그 웃음소리가 폭포의 굉음 위로 퍼져나갔다.
옷이 젖어 몸에 달라붙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스트레스도, 나이도 함께 씻겨 내려간 듯했다.
간이 샤워장에서 옷을 입은 채 바닷물을 헹구듯 씻어내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여름의 뜨거운 바람이 금세 옷을 말렸다. 피로마저 그 물소리 속으로 흘러가 버렸다.
몸은 흰 깃털처럼 가벼워져, 금방이라도 폭포의 물보라 위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다시 전망대에 서서 천둥 같은 함성을 들었다.
하늘과 폭포, 안개와 빛이 뒤섞여 분간이 어려운 그 광경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모든 생명은 저 물처럼 태어나고 흘러가며, 부서지고, 다시 순환한다는 것.
나이아가라의 물줄기 속엔 탄생과 소멸의 진리가 살아 있었다.
며칠 전, 동생은 결혼식 피로연에서 새 며느리와 춤을 추었다. 행복이 얼굴에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지난 세월을 돌아보았다.
모범가정을 볼 때마다 작아지곤 했지만, 돌아보면 내 가족 또한 보이지 않는 끈으로 나를 지탱해 주었다.
이제 나는 그 끈의 연장자이다.
나이아가라에 초대받은 나.
그 폭포수는 내 나이를 앗아갔다.
이민자의 외로움 속에서도 우리는 부서지고 흩어지며, 다시 일어서는 존재들이다.
자연은 그 사실을, 쏟아지는 물줄기와 거대한 함성으로 조용히 가르쳐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