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털로프 캐니언, 빛의 향연>
국화 리
늦은 봄 저녁이었다.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혜숙 부부의 차에 올랐다. 한 시간쯤 달려 캘리포니아 벨리 지역의 조용한 동네, 숙의 집 앞에 도착했다.
아담한 집 안에서는 서울에서 여행 온 선자 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숙은 칠순을 맞아 오랜 친구들을 불러 함께 여행 중이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그녀는 남편에게 두 달의 휴가를 받아냈다고 했다. 인생의 황혼길에서, 자신만의 빛깔로 다시 삶을 채색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 셋은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 소식도 들으며 우정의 불빛이 오늘처럼 늘 따스하게, 서로에게 빛이 되기를 바랐다.
나바호의 땅에서
이른 아침, 교회 마당에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숙이 여신도 회장으로 마련한 어머니날 나들이였다. 나는 서울 손님 선자 씨와 짝이 되어 자리를 잡았다.
버스는 캘리포니아의 광막한 사막길을 가르며 달렸다. 라스베이거스를 지나 브라이스캐니언이 있는 유타 주를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애리조나 주 페이지(Page) 근교의 앤털로프 캐니언이었다.
창밖으로는 마른 풀더미와 붉은 흙빛 사막이 끝없이 이어졌다. 9시간이 넘는 긴 드라이브에 대부분은 졸음에 빠졌지만, 우리는 새로운 만남의 설렘 속에서 깨어 있었다.
도착한 곳은 나바호 네이션 부족 공원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 눈에 잡히는 것이라곤 바람뿐이었다. 그러나 그 황량한 땅 아래에는 수백만 년 세월이 새겨 넣은 비밀스러운 협곡이 숨어 있었다.
그곳이 바로 ‘앤털로프 캐니언’이다.
붉은 지하, 그 황홀경
‘앤털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은 나바호족 언어로 “물이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곳”을 뜻한다. 이름 그대로, 바위를 깎아낸 물의 흔적이 신비롭게 남아 있다. 나바호 사람들은 이곳을 신이 거하는 성스러운 땅으로 믿었다. 인간의 손길이 아닌, 신의 손으로 빚어낸 작품이라 여겼던 것이다.
공원 사무실 건물을 향해 걸으니, 벽면에는 화려한 장식의 전통 복장을 한 나바호 추장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 앞에서 모두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나바호 부족의 영토로, 반드시 그들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가이드를 따라 벌판을 걷기 시작했다. 사방이 텅 빈 불모지였다. 십오 분쯤 걸었을까, 모두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이 바로 입구였다. 내려다 보이는 좁은 틈새 앞에서 가이드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곳은 로어 앤털로프 캐니언(Lower Antelope Canyon)입니다. 입구가 좁고, 계단이 많고, 통로가 구불구불하지요.”
한 사람씩 좁고 가파른 철제 계단을 내려가자니 가슴이 울렁거렸다. 지하 2층쯤 내려갔을까, 붉은 사암벽으로 둘러싸인 지하의 세계가 열렸다.
그 아래는 삼십여 명이 설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있어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위쪽을 향했다.
협곡의 틈새로 스며든 햇살이 사암벽을 비추자, 주홍빛·금빛·보랏빛이 뒤섞인 줄무늬가 벽면을 따라 흘렀다. 빛은 굽이진 바위의 곡선을 따라 춤추며 끊임없이 변했다. 빛과 그림자가 엮어내는 신비한 향연이었다. 이곳은 빛의 미술관 같았다.
나는 숨을 고르며 벽을 바라보았다. 영겁의 세월이 깎아 만든 물결무늬가 마치 살아 있는 듯, 빛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느 날 거센 홍수가 밀려왔지.
물살이 바위를 깎고, 뜨거운 열기가 사암벽을 태웠어.
하지만 언젠가 햇빛이 스며들었고,
그때부터 너와 나는 친구가 되었지.
우리들의 대화는 매시간 달랐어”
그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신의 작품 앞에서 나는 말없이 숨을 삼켰다. 수많은 세월의 속삭임 속에서 협곡도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울기도 하고 박장대소도하고 얼굴에 핏대를 올리며 싸우기도 했을 것이다. 그곳 벽마다 깊숙이 스며있는 그들의 대화는 비극과 희극으로 그려져 있어다.
그 색채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의 경지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안의 깊은 어둠을 마주했다. 우리의 내면에도 빛은 통과한다. 그것은 정신의 빛, 영혼의 빛이다. 내 안의 벽이 평평하고 촉각이 없다면 앤털로프 캐니언의 그 찬란한 빛도 생겨날 수 없다.
인생의 협곡을 통과하며 만난 사람들, 그들 또한 각자의 빛을 품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는 고독 속에서 영혼의 빛을 찾았고,
데레사 수녀는 고통 속에서 사랑의 불빛을 피워 올렸다.
프란치스코 신부는 가난한 자를 품었고,
장기려 박사는 북에 두고 온 아내와의 약속을 지켰다.
윤동주 시인은 나라 잃은 슬픔을 시로 일깨웠고,
이길여 총장은 구순의 나이에도 교육과 봉사로 삶을 환히 비춘다.
그들의 삶은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나의 등불이었다.
가장 깊은 상처가 때로는 가장 찬란한 빛을 만든다 하지 않는가.
그들의 영롱한 빛으로 세상이 채색되듯, 나 역시 내면의 벽을 조각하며 조화롭게 만나고 싶다.
그 반사된 빛 속에서 나만의 빛을 만들어가리라.
‘어퍼 앤털로프 캐니언(Upper Antelope Canyon)’은 입구가 넓어 접근이 쉽고, 한낮의 ‘빛기둥(Light Beam)’을 보기 위해 사진가들이 대기한다.
우린 로어 앤털로프 캐나언에 있어 ‘골든 타임’을 볼 수없었지만, 협곡 속을 구불구불 걸으며 빛의 파도에 흠뻑 취했다.
계곡을 나와 흙바람 이는 들판에 섰을 때, 마치 한바탕 꿈을 꾸고 나온 듯했다.
자연이 수만 년을 빚어 간직해 온 그 작품을 마음속에 저장했다. 언제든 그 빛을 다시 꺼내 안을 수 있으리라.
이민자인 숙은 남편과 함께 한때 힘든 세월을 견뎌왔다. 그 절망의 시절의 그 고통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일구는 힘이 되었다. 이제는 여유로운 삶 속에서, 서울 친구를 불러 함께 여행을 즐기고 있다. 그녀의 마음은 앤털로프의 빛처럼 따뜻하고 깊었다.
나도 그 초대에 들어가, 잠시 그녀의 빛 속에서 반사되었다.
앤털로프의 협곡은 굽이굽이 이어졌고, 그 안을 통과하는 빛은 시간의 강처럼 흘렀다.
우리의 인생 또한 그러하다. 어둠을 지나면 빛을 만나고, 그 빛으로 누군가의 길을 비추며 살아간다.
앤톨롭프의 그 영롱한 빛을 담을 벽의 조각은 내가 만들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