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평원 위에 선 사피엔스
― 데스밸리에서 ―
나, 호모 사피엔스.
21세기의 차림으로 소금 평원 위에 서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세상, 마치 겨울 평원 같다.
1849년, 금을 찾아 나선 개척자들이 이 사막을 건넜다.
끝없이 이어진 소금밭, 물 한 방울 없고 풀 한 포기 없는 절망의 계곡.
목숨을 부여잡고 걸었지만, 죽은 자가 속출했다.
그렇게 이곳은 ‘데스밸리’가 되었다.
세상의 구석구석을 다 보고 싶었으나, 이곳 죽음의 계곡에 서니 문득 내 여행의 종점에 이른 것일까.
인생길에서 자주 울먹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별이 된 친구가 남편의 동창여행에 초대했다.
일행은 우리보다 주름이 한참 깊었고, 나는 그 노년의 그림자 속에서 당황했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네 아낙이 그 장소에 서 있다.
그때 그 부인들처럼 나는 주름 골 얼굴이 되었다. 늙어 감을 자각한 나이에 이루었다.
데스밸리로 향하는 지루 한 길이다.
창밖으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산줄기들이 겹겹이 펼쳐진다.
어젯밤 라스베이거스에 들려 본 마이클 잭슨 추모 공연을 불러왔다.
미국에 와서 가족과 처음 본 톰 존스의 ‘딜라일라‘. 그 힘찬 고음과 남성미는 아직도 귓가를 울린다. 마이클 잭슨 쇼 역시 황홀했다. 그들도 세월 따라 가버렸지만 그 노랫소리는 삭막한 여행길에 꽃잎 되어 날린다.
소금밭이 가까워질 즈음,
산등성이가 연둣빛·보랏빛·핑크빛으로 화장을 한 듯 빛난다.
“누가 저 산에 연지곤지를 발랐을까?”
막내 아낙의 말에 여행의 달인이 웃으며 답한다.
“저 산들은 한때 바다 밑에 잠겨 있었어.
여러 광물이 스며 있다가 햇살을 만난 거지.”
퇴적된 지층이 품은 시간의 색이 그렇게 드러난 것이다.
2만 년 전, 거대한 호수가 말라 증발하며
바닥에 남긴 결정들이 바로 이 소금 평원이다.
이곳은 해수면보다 86미터 낮은 데스밸리의 중심,
배드워터 분지(Badwater Basin).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평원 위로
인간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아낙들이 발끝의 소금 알갱이를 집어 들며 웃는다.
“정말 소금이네.”°
내 발밑의 소금층은 수만 년 세월의 기록이며,
한때 푸른 물결이 넘실대던 호수의 흔적이다.
그 시절,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들은
이곳을 ‘생명의 계곡’이라 불렀을 것이다.
북미 최고봉 마운트 휘트니에서 불과 120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대륙의 가장 낮은 지점 배드워터.
뜨거운 낮과 별이 쏟아지는 밤이 공존하는 이 땅,
죽음과 생명, 고난과 축복이 함께 숨 쉰다.
모든 것은 변한다.
우주 만물의 순환 속에서 인간의 삶도 흘러간다.
오늘의 강물은 어제의 것이 아니 듯이 내 몸의 세포 또한 죽고 매일 새로 태어난다.
육체가 변하면 생각도 변한다.
동양의 현자들은 그 변화를 읽기 위해《주역》을 남겼다.
공자는 그 책을 손때 묻도록 탐독했다.
나 역시 젊은 시절《주역》을 읽으며
‘삶의 정점에 오르면 내려올 일만 남는다’는
단순하지만 깊은 진리를 곱씹었다.
그러나 그때는 머리로만 알았고,
마음은 여전히 요동쳤고 질투하고 경쟁하며 앞서려 애썼다.
사막을 헤매던 개척자들의 욕망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좀 알 것 같다.
눈앞의 것만 좇는 인생은 결국 방향을 잃은 탐험일 뿐임을.
소크라테스의 오래된 명제도 이천 년 넘게 살아 있는 이유를.
깨달음으로 담아내지 않으면, 진리도 바람처럼 스쳐간다는 것을
소금 평원 위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나는 수만 년 세월이 빚은 자연의 한 점,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일 뿐이다.
인간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척박한 땅에도 천여 종의 식물과 무수한 생명이 살아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여정이란,
극한 속에서도 문명을 이어가려는 이야기.
소금 평원 위에 남겨진 발자국이 그 오래된 증언이다.
나, 호모 사피엔스,
내 아이들에게,
이 죽음의 계곡을 유산으로 남겨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