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국화리의 [그리스 기행수필 1.2.3.]

3 회 연재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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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서양의 뿌리를 찾아서]


「프롤로그」

두 여인이 만나서


적당한 긴장감 속에 짐을 꼼꼼히 챙겼다. LAX 공항에 도착하니, 핑크 목련처럼 웃는 그녀가 나를 맞았다. 수년간 그녀는 세계여행을 다녔다. 찰떡같은 남편은 어떻게 떼어놓고 온 걸까. 그녀는 4.29 폭동의 피해자로 사업체를 잃은 바 있다. 우린 어려운 시절, 교회에서 만나 서로 위로가 되어주었다.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독서회에서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우리는 어느새 삼십 년 지기가 되었다.

2017년, 그녀가 그리스 여행에 남편 대신 나를 동반자로 선택해 주어 모처럼 둘만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양 문명의 뿌리를 이룬 고대 그리스―그 신화와 철학, 유산과 정신―을 마주하며,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되새겨볼 것이다. 그리스 신화를 성인이 되어서야 읽기 시작해서인지, 처음엔 황당한 이야기들에 쉽게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혼자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낳고, 다시 그와 결합해 크로노스를 낳았다는 이야기. 자식이 부모를 넘볼까 두려워 아이들을 삼키거나 땅속에 파묻는 신들. 허벅지에서 아이를 키우고, 팔이 백 개 달린 괴물이 등장하며, 뱀처럼 다리가 휘감긴 존재들……


그처럼 엉뚱한 상상력의 세계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시공을 넘나들며 죽은 영혼과도 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자, 나는 비로소 그들의 신들과 마주할 자격이 있다고 느꼈다. 이제, 그리스는 나를 손님으로 맞아줄 것이다.


1. 그의 심장 안으로


터키항공 비행기를 타고 경유지인 이스탄불로 향했다. 객실은 다소 낡았지만, 무사히 도착할 수만 있다면 불만은 없었다. 이스탄불에서 다시 아테네행 비행기로 갈아탔고, 한 시간 후 마침내 그리스 땅에 발을 디뎠다.


창밖으로 펼쳐진 도시의 첫인상은 예상과 달랐다. 가꾸지 않은 도로, 흉물처럼 남겨진 건물들, 폐가 같은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경제 위기로 국가가 도산 위기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시든 역사 도시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호텔에서 그리스식 아침을 먹었다. 진하고 쫀득한 요구르트에 꿀과 딸기, 자두를 곁들이니 별미였다. 햇살 속에서 자란 야채와 과일은 달고 아삭했다. 청정한 자연이 빚어낸 맛이 하루 종일 입안에 여운으로 남았다. 하이디는 공항 구내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며 종업원 수를 늘려왔다. 섬세한 입맛의 그녀도 만족한 듯, 얼굴 위로 포근한 햇살이 내려와 있었다.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오르는 언덕길에는 부활절 연휴를 맞아 학생 관광객들이 많았다. 성을 지키던 요새의 성벽은 여기저기 훼손된 채 고요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는 뼈대만 남은 고대 건축물들―엘렉티움 신전, 니케 신전, 그리고 파르테논 신전이―아침 햇살을 받으며 우뚝 서 있었다. 친구는 느낌표처럼 눈길을 끄는 고대의 유적들에 빠져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스 여행에 사진이 많은 이유는 영화감독을 잠깐 했던 남편의 촬영 습관을 닮아서일 것이다.



2. 그대, 파르테논 신전이여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오르자 아테네 시가지가 사방으로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땀이 밴 이마 위로 시원한 바람이 스쳤다. 우리는 수십 개의 흰 기둥만이 남은 신전

앞으로 다가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세계문화유산 1호, 파르테논 신전이구나. 실물이 훨씬 위엄이 있지!” 그녀는 말했다. “기둥들이 꼭 사열하듯 서 있네.” 내가 속삭였다. 하이디는 조심스레 기둥 하나에 손을 얹었다.

“이 안에 아테나여신의 거대한 동상이 있었다고 했어. 지금은 없지만, 뭔가 존재감이 느껴져. 여신도, 지붕도 사라졌는데,” 그렇지?

그렇다. 이곳엔 한때 델로스 동맹의 전쟁자금이 모여 있던 금고가 있었다. 기둥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하이디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걸 만든 사람이 페리클레스 대왕(BC 495경~429)이라 했지. 아테네 민주주의의 상징.”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페르시아 전쟁 승리 후, 대왕은 아테네의 위상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해 시민들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신전을 재건하기로 했어. 하지만 사업 규모가 너무 커 시민들의 반발이 있었지. 그는 자신의 재산으로 완성하고 자기 이름을 새기겠다 하자. 시민들도 마음을 돌리고 아테네 이름으로 건설하기로 했지. 그는 뛰어난 웅변가였던 거야.”우리는 지금도 그런 지도자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거대한 기둥들은 우리 키의 수십 배는 되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몇 아름 되어 보이는 기둥을 바라보았다. 중간에 배가 좀 나오고 세로로 파인 줄이 있었다.

“이것을 배흘림기둥이라고 한데. 곧게 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중간을 불룩하게 만들었다니, 기술이 참 섬세했어.”


두 여인은 곡선을 쓰다듬으며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멀리서 흰 대리석을 나르고, 쪼개고, 다듬고, 세우던 이들의 손놀림과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2,500년의 세월을 견디며 이 신전은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기독교 시대에는 성전으로, 이슬람 점령기에는 회교 사원으로 바뀌었고,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화약고로 사용되었다. 결국 베네치아의 공격으로 화약이 폭발하면서 지붕은 산산이 날아갔다.


그 장면을 떠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앞이 흐려졌다. 정복자들은 신전을 파괴하고 조각들을 떼어내 일부는 대영박물관에 팔아 넘기도 하지 않았던가.

영국박물관에 남의 나라인 그리스 조각들과 이집트 유물들이 가득 채운 모습을 보며 강자의 약탈과 횡포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여전히 뼈대만으로도 한 시대의 큰 울림을 전하는 역사의 현장을 걸어 나왔다.


페리클레스 대왕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역병이 돌던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아테네는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항복하며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문화인 아테네 시민이 군인정신의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는 마음이 어떠했을까.

“아테네는 위대하고, 강하며, 영원하리라!”

펜은 무기보다 강하여서 현대인은 지금도 아테네를 찾고 있다.



(2부가 다음에 계속)


글쓴이 소개

필명: 국화 리

숙명여고와 서울교육대학 졸업.

1982년 미주 로스앤젤레스로 이민

한의사로 활동(산타모니카) 한의학 박사

2006년 미주『문학세계』로 등단

2010년 서울 『한국산문』으로 재등단

2025년 수필집 『사랑을 말하고 싶은 날』출간

미주문인협회원,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

현재 로스앤젤레스 피오피코 도서관 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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