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국화리의 [그리스 기행수필 1.2.3]

3 회 연재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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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서양의 뿌리를 찾아서]


3. 디오니소스 제전/비극과 희극


성벽 아래로는 로마 시대에 지어진 제우스 신전과 디오니소스 극장이 내려다보였다.

"저기 보이지? 디오니소스 극장. 기원전 5세기부터 14,000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저기서 비극을 봤대."


"와, 전쟁 중에도 연극을 봤다고?"

그렇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은 이 극장에서 위로를 받았다.

수백 편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건 고작 32편뿐이다.


비극의 아버지 아이스킬로스, 완성자 소포클레스, 그리고 이단아 에우리피데스.

그들은 비극경연에서 다수의 수상작가 들로 대표작은 지금도 고전으로 사랑받는다.

「오이디푸스 왕」「아가멤논」「안티고네」「메데이아」—신과 인간 사이의 긴장, 분노, 복수, 파멸 등을 섬세한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관객은 무대 위 인물들을 통해 자기 내면을 마주하고, 인간 본질과 화해를 고민했을 것이다.


희극은 비극보다 반세기쯤 늦게 등장했다.

‘코모디아’라고 불리는 이 희극은 하루 다섯 작품을 상연했고, 최고의 한 작품에 상을 주었다.

“하루에 다섯 편이나 본 거야?” 내가 묻자, 하이디가 웃었다.

“그러니까 심벌도 흔들고 춤도 췄겠지. 안 졸려야 하니까.”


실제로 남성의 상징을 과장되게 만들어 흔들며 웃음을 유도했다고 한다. 현대 남성들의 음담패설 유머가 여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풍자극도 빠질 수 없다. 조선의 탈놀이처럼, 양반 같은 지배층을 신랄하게 조롱하

며 서민들의 한을 풀어주었다.


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리시스트라테』를 좋아한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여인들이

잠자리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는 이야기다.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전쟁에 맞섰던 이기발한 발상을 2,400년 전 아리스토파네스가 했다는 게 놀랍다.

그와 석양 아래를 걷게 된다면, 나는 꼭 물어볼 것이다.

“그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요? 여성들로부터 쏟아지는 인기를 어떻게 감당하셨

나요.”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공연된 작품들. 인간을 꿰뚫는 통찰과 유머, 그리고 위로는 지금도 계속된다. 지금의 디오니소스 극장은 잡초가 무성하고 훼손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바로 옆, 로마 시대의 [헤로데스 아티쿠스 원형극장]은 아직도 살아 있다.

5천 석 규모의 이 극장에서는 지금도 세계적인 공연이 열리며, 그 무대에 울려 퍼진

조수미의 소프라노는 얼마나 눈부셨을까.



4. 아고라의 목소리


“여기가 바로 아고라구나. 고대 민주주의의 중심지! 시민들이 모여서 회의하고 토론했다지.” “맞아. 처음엔 군사 훈련장이었는데 시장이 되고, 시민들이 모여 회의를 하던 장소로 바뀌었지. 말하자면, 세계 최초의 ‘광장 민주주의’야.” 그녀는 감격한 듯 말했다. 그 광장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소크라테스가 서서 열변하고 시민들이 귀 기울이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웅변가이자 철학자였던 그가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대화하고 가르치던 곳, ‘거리의 대학’ 같은 곳이지. 그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도자로 키우기를 원했어.”

“소크라테스는 직업도 없이 여기서 떠들기만 한 거야?” 그녀가 물었다.


“직업이 없었던 건 아니야. 원래는 석공이었고,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조각도 했지. 전쟁에도 세 번이나 참전했고. 마흔 즈음 그는 선언을 했어.

‘나는 돈을 벌지 않고 철학에 내 인생을 바치겠다!’고 말이야.” 그의 목소리가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아내인 크산티페가 왜 소크라테스에게 물을 끼얹었는지 알 것 같네. 철학자의 유머가 재미있지 않아? ‘천둥이 치더니 기어이 소나기가 오는군.’ 우리는 크게 웃었다.



소크라테스의 수제자들


그에게는 여러 제자들이 있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크세노폰 그리고 또 한 명

의 반역자도.

“ 플라톤은 이 근처에 아카데미아를 세웠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거기서 배웠지.”

“응, 마케도니아 출신이라 아테네 사람들한테는 좀 무시당했지. 근데 그는 스승의 이상주의를 실천주의로 바꾸며 서양 철학의 기초를 만들었어.” 그녀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그 둘은 사이가 좋았어?”

“ 글쎄, 스승과 제자로 이상과 현실, 두 길을 각각 걸었으니까.”

제자, 크세노폰은 운명에 휘말렸다. 페르시아의 반란 지도자 소 키루스가 아테네 용병 1만 명을 모을 때, 그는 기록자이자 병사로 참전했다. 하지만 키루스가 전사하자 병사들은 사막에 남겨졌고, 크세노폰은 그들을 이끌고 귀환했다. “결국 배신자로 몰려 추방당했다지?” 하이디가 안타까워했다.


“응. 고국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어. 그래서 스파르타에 머물며 『헬레니카』,『키루스의 교육』 같은 명저를 썼지. 후대 정복자들의 교과서가 되었어.”



스승이 떠난 자리


우리는 조용히 감옥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었다. 바위를 파내어 만든 소박한 감옥.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을 맞이한 자리였다. 나는 한동안 말없이 서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세상이 지혜를 두려워했나 봐.” 그의 죄목은 젊은이들을 선동하고, 전통 종교를 부정했다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그를 도망치게 도우려 했지만, 그는 끝내 사약을 받아들였다.

“연세대 김상근 교수는 [플라톤 아카데미] 강의에서 아테네가 저지른 역사적 죄를 말

했어.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 그리고 동족상잔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내가 말하자 하이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력으로 문명을 무너뜨린 스파르타는 역사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철학과 예술,

사유의 도시 아테네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하이디는 기념비 앞에 다가가 사진을 찍으며 물었다.

“사도 바울도 여기서 전도했다며?”

“응. 로마 시대에도 이곳은 여전히 역사적 중심지였거든. 저기 보이는 벽이 그 흔적이야.”

석조 유적을 보며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이 스쳐 지나가듯 떠올랐다. 우리는 자세를 낮추며, 그 옛날 믿음과 사유가 교차하던 순간을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글쓴이 소개

필명: 국화 리

숙명여고와 서울교육대학 졸업.

1982년 미주 로스앤젤레스로 이민

한의사로 활동(산타모니카) 한의학 박사

2006년 미주『문학세계』로 등단

2010년 서울 『한국산문』으로 재등단

2025년 수필집 『사랑을 말하고 싶은 날』출간

미주문인협회원,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

현재 로스앤젤레스 피오피코 도서관 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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