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7. 로마와 피렌체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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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편


7. 로마와 피렌체


새해가 시작되면 나는 세계 지도를 펼친다. 미지의 땅을 향한 호기심, 마음으로만 거닐던 길 위에서의 조우, 그리고 낯선 이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올해 나의 선택은 서부 유럽이었고, 그 길을 함께할 동행자는 나의 친구이자 딸인 ‘윤’이다.

뉴멕시코 산타페의 문화재단에서 ‘문학의 밤’을 기획하며 예술의 향기를 전하는 딸. 모국어가 서툰 그녀가 한인 단체 여행의 낯섦과 어르신들 사이의 서먹함을 어떻게 견뎌낼지 걱정이 앞섰지만, “엄마, 좋은 생각이야”라는 딸의 화답은 사랑스러웠다.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의 고도(古都)들로 이어지는 여정. 짧은 일정 속에 서구 문명의 정수를 훑고 지나가는 아쉬움은 있겠으나, 우리 모녀에게는 지난날의 삐걱거렸던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화음으로 치유해 줄 소중한 시간이 되리라 믿으며 길을 나섰다.


로마, 그 노천 박물관으로


오래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독자의 지적인 열풍을 몰고 왔다. 천 년 제국의 흥망성쇠를 담아낸 그 방대한 서사는 수많은 이를 이탈리아로 이끌었고, 나 역시 그 물결에 몸을 싣고 처음 지중해의 태양 아래 섰던 기억이 선명하다.

다시 마주한 로마는 여전히 도시 전체가 거대한 ‘노천 박물관’이었다. 콜로세움의 거친 돌벽부터 트레비 분수의 물줄기, 판테온의 신비로운 돔과 바티칸의 보물들까지. 발길 닿는 곳마다 유적이 아닌 곳이 없었다. 나는 그 켜켜이 쌓인 시간의 퇴적층 위에서 마치 꿈을 꾸듯 여정을 이어갔다.

인간은 어찌 이토록 고대부터 예술과 문화라는 숭고한 가치에 심취해 왔던 것일까. 그리스라는 토양에서 자양분을 흡수해 꽃을 피운 로마 문화는 견고하면서도 풍요로웠다. 카이사르부터 아우구스투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웅이 일궈낸 ‘팍스 로마나’의 번영은 찬란했으나 그 후 쇠퇴의 길을 걸으며 멸망했다.

"로마의 정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나의 발걸음은 사색의 속도를 유지해 본다.

르네상스의 서막, 밀라노

우리가 도착한 첫 도시는 이탈리아 패션과 상권의 심장, 밀라노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주도하는 문화도시이기도 하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광장에 들어서자, 수천 개의 정교한 조각상과 뾰족한 첨탑으로 장식된 두오모 성당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4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인간이 신에게 닿기 위해 쏟아부은 경건한 열망이 그 차가운 대리석마다 뜨겁게 배어 있었다. 그 섬세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신의 작품 같은 이 예술품이 관광 상품으로 남는 것일까. 여전히 완공을 서두르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떠올리며, 불멸을 꿈꾸는 대성당들의 운명을 생각했다.


광장 맞은편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1452~1519)의 동상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는 피렌체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스승을 능가하는 실력이 되었다 「수태 고지」 「베노바가의 성모」등의 작품을 남겼다. 서자로 태어난 그는 그 당시 멸시를 당하는 신분이었다.


피렌체를 떠나 이곳 밀라노에서 17년을 머물며 「최후의 만찬」을 남긴 천재이다. 그림은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아 성당의 수도원 식당에 있다. 그 걸작을 이번 여행에서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해부학자, 지리학자, 음악가등 다양한 분야와 직업을 갖고 활동했다. 역사에서 가장 다재다능했던 천재는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그 많은 일과 연애하느라 여성에게는 틈을 주지 않았을까. 그의 고독은 모나리자를 보며 달래 왔을까. 그 여인 초상화가 죽는 날까지 그를 지키고 있었으니, 그들의 대화가 슬며시 내 가슴에서 애틋하다.

동상을 어루만지다가 그 거대한 지성 앞에서 사진 한 장에 추억을 담았다.

꽃의 도시 피렌체, 메디치의 자부심을 걷다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미켈란젤로 언덕에 다시 섰다. '꽃같이 아름다운 도시'라는 그 이름처럼, 피렌체는 주황색 지붕들 위로 솟은 두오모의 웅장한 돔과 종탑이 어우러져 한 폭의 유화 같은 풍경을 선사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연인처럼 반가웠다.

높이 5m가 넘는 대리석상은 균형 잡힌 남성상의 상징이다. 피렌체 독립 도시 국가의 자유 수호를 상징하게 되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요람이자 메디치 가문의 자부심이 깃든 곳이다.

특히 15세기 이탈리아의 마스터마인드였던 로렌초 메디치가 없었더라면 보티첼리, 다빈치, 미켈란젤로라는 거장들의 이름은 역사 속에 이토록 찬란하게 빛나지 못했을 것이다.

바티칸 성당 천장에 새겨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생명력은 바로 이곳, 피렌체의 자유로운 공기 속에서 잉태된 것이리라.

도시 전체를 감싸는 르네상스의 향기에 나는 이곳에 몇 개월은 머물고 싶다는 갈망에 빠져들었다.

트레비의 소원과 딸아이가 골라준 빨간 구두


로마 여정 중 가장 천진난만했던 순간은 트레비 분수 앞에서였다. 동전 두 개에 간절한 기도를 담아 등 뒤로 던지며 우리는 아이처럼 웃었다. 분수 속에 가라앉은 수많은 동전만큼이나 인간은 저마다의 소망을 품고 살아간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소원은 줄어들지 않으며, 그 희망이 있기에 우리의 발걸음은 늘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자유 시간에는 딸아이와 함께 이탈리아의 가죽 상점을 둘러보았다. 나는 세련된 까만색 가죽 코트를 골랐고, 딸은 나에게 빨간 구두를 선물해 주었다.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뽐내는 나의 모습에 딸은 "엄마, 주책이야!"라며 핀잔을 주었지만, 곁에 있던 일행은 그 모습이 마치 중후하면서도 매혹적인 풍미를 지닌 '오래된 와인 북(Wine Book)' 같다며 다정한 찬사를 건네주었다.

그 말 한마디에 여행의 피로가 사라지는 것을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칭찬에 약한 엄마'인가 보다.

마키아벨리, 고독한 군주론의 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조용한 저녁, 나는 피렌체가 낳은 비운의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떠올렸다. 화려한 외교관에서 하루아침에 공직을 잃고 은둔해야 했던 시련 속에서도, 그는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 명저 『군주론』을 써 내려갔다.

때로는 지도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냉철한 사유는 당시에는 파격이었고 나에게도 불편하게 다가왔다. 역사를 펼쳐보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역시 『군주론』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는 계몽군주로서 자비와 이성을 결합한 통치를 꿈꾸며 ‘개화된 독재자’로 평가받고 싶어 했지만, 현실의 정치와 전쟁 속에서 그 이상은 끝내 온전히 실현되지 못한 듯하다.

그의 책은 권력과 인간 심리를 다루는 최고의 고전으로 남았다.

살아서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초라하게 묻혔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이름은 대리석보다 단단하게 빛났다.

18세기에 이르러 산타 크로체 성당으로 이장된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 어떤 찬사로도 부족할 만큼 위대한 이름" (TANTO NOMINI NULLUM PAR ELOGIUM)


이탈리아의 하룻밤은 깊어간다. 로마의 숨결이 깃든 이 땅에서, 나는 권력과 인간, 그리고 역사가 남긴 아이러니를 다시 한번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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