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8. 포로 로마노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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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편


8. 포로 로마노

- 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로마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떠올리다.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의 돌벽 위로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았다. 고색창연한 둥근 벽들이 황금빛 빛을 뿜어냈다. 군데군데 무너져 내린 모습이지만 삼층의 큰 규모는 한때 제국의 위용을 증명하고 있었다.

5만 명 이상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흔들고, 검투사들의 창끝에서 튀어 오르는 피에 관객들이 열광하던 그 잔혹하고도 화려한 축제는 이제 정적 속에 침묵한다. 콜로세움의 부서진 벽과 돌바닥에 피 냄새가 젖어있는 듯해서 기분 좋게 걸을 수가 없었다.

그곳을 빠져나오면 기둥 몇 개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포로 로마노를 마주하게 된다. 고대 로마 공화정의 심장이자 원로원이 있던 자리이다. 그곳에서 우렁찬 연설로 군중을 사로잡던 카이사르의 모습을 본다. 삼두정치의 정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영웅의 모습. 그가 정적의 칼에 쓰러진 곳도 이곳이다. 나는 이천 년 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치적 동맹의 불꽃

영웅 카이사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겹쳐지는 얼굴이 있다. 우리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당대 최고의 미녀 배우의 얼굴로 기억한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는 미모 이상의 무기를 지닌 지략가였다. 7개 국어에 능통하고 그리스 철학과 웅변술을 겸비한 그녀에게 사랑은 왕국을 지키기 위한 가장 치명적이고도 아름다운 전략이었다.


기원전 48년, 카이사르 앞에 나타난 그녀는 전설적인 ‘양탄자 밀사’였다. 둘둘 말린 양탄자 속에서 굴러 나온 21세의 젊은 여왕은 52세의 노련한 정치가 카이사르의 심장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갈리아 원정을 통해 로마의 정점에 선 카이사르였지만, 그녀의 총명함과 이집트의 거대한 부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그녀는 카이사르를 통해 이집트의 왕좌를 되찾았다. 카이사르는 그녀와 결혼하여 아들 카이사리온을 낳았다. 그녀는 왕녀로서 제국의 미래의 청사진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들은 로마의 별장에 머물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으리라. 그가 제국을 꿈꾸는 독재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는 세력이 생겼다.

그는 원로원에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비명과 함께 차가운 바닥은 피로 물들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들은 클레오파트라의 절규가 들려온다.

그녀의 구원자, 안토니우스

카이사르가 쓰러진 뒤 로마는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레피두스의 3두 정치 체제였다. 안토니우스는 동방 원정을 위한 자금과 병력이 필요했다. 카이사르의 오른팔이었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타르수스로 불렀다.

그녀는 금박을 입힌 화려한 배를 타고 비너스 여신처럼 나타났다. 황금 배 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순식간에 불꽃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토니우스와의 사랑은 ‘이성을 마비시킨 격정’이었다,라고 표현한다.

안토니우스는 그녀와 결혼하고 알렉산드리아의 화려한 연회 속에 자신을 던졌다. 그들은 로마와 이집트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꿈꿨었다. 전에 무산된 그 꿈을 이루게 된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은 활화산이었다.

카이사르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는 전략가로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의 패배는 두 연인의 종말을 예고했다. 안토니우스는 스스로 칼끝에 몸을 버렸고, 클레오파트라 역시 로마의 전리품이 되는 대신 독사의 독을 가슴에 품어 여왕으로서의 존엄을 지켰다.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수학자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단순히 그녀의 미모를 예찬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매력과 의지가 거대한 제국의 운명을 뒤흔들 수 있다는 역설을 말하고 있었다.

클레오 파트라는 말한다.

“강력한 두 지도자에게 나는 내 조국을 위해 한 몸을 바쳤어. 그들은 나의 매력에 매료되었고, 나 또한 그들과 한 몸이 되어 제국을 꿈꿨지. 안토니우스를 만났을 때, 나의 열정은 활화산이었지만 이제 재만을 남겼구먼.”


카이사르가 호령하던 대리석 기둥들은 이제 여행객들의 쉼터가 되어 있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그들이 남긴 사랑의 이야기는 인류의 기억 속에 살아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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