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9. 아드리아해의 보석, 그 멈춰버린 시간
이탈리아편
9. 아드리아해의 보석, 그 멈춰버린 시간
- 베네치아에서 폼페이까지 -
베네치아, 바다 위에 세운 여왕
무솔리니가 건설했다는 평화의 다리를 건너, 우리는 도시의 심장을 향하여 나아갔다. 작은 유람선에 몸을 싣고 삼십여 분을 달리자,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의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육지에서나 보았던 육중한 석조 건물들이 물 위에 서 있는 광경 앞에서,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서기 425년, 이민족의 침입을 피해 바다로 숨어든 로마인들의 후예가 일군 기적이다. 베네치아는 바다 위에 시간을 쌓아가며 차곡히 올린 도시로 118개의 섬과 400여 개의 다리가 엮어 만든 수상 도시이다. 현실보다는 소설이 만든 유토피아의 도시에 초대된 착각에 빠졌다.
150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성 마르코 성당 앞에 서자, 천 년을 견뎌온 위엄이 고딕과 비잔틴의 문양 속에서 숨 쉬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모습 앞에 서니 천사들의 합창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그 화음들이 성당 건물들을 휘감아 돌고 있었다.
그 광장에는 사람과 비둘기가 뒤섞여 있었다. 관광객들이 던지는 모이를 받아먹기 위해서였다. 평화의 비둘기가 나에게도 달려들자 한 남자가 모이 봉지를 내밀었다. 나는 손을 내밀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보고 손을 슬며시 거두었다. 낭만보다 먼저 경계가 말을 걸어왔다.
한때 유럽의 부를 움켜쥐었던 해상 도시 국가의 영화는 관광객의 발길로 또 다른 활기를 모았다. 도시의 매연과 일상의 지친 나그네들에게 그들은 손짓한다.
“무엇이 그토록 당신을 힘들게 했나요. 이곳에선 그저 바다의 숨결에 몸을 맡기세요. 인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향유하는 것임을, 저 물결이 당신에게 말해주고 있지 않나요.”
수상도시의 불빛은 깊어만 가는데 안타까운 뉴스도 있었다.
온난화의 물결 앞에, 수백 년간 도시를 지탱해 온 진흙 속 나무 기둥들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소식이다. 마치 가장 화려한 순간에 조금씩 사라지기로 결심한 환상 속의 도시처럼, 베네치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며 견디고 있는 중이 아닐까.
곤돌라 위의 합창, 두 민족이 나눈 즉흥의 축제
해가 기울 무렵, 우리는 곤돌라에 올랐다. 작은 곤돌라에는 5명 제한이 있어 우리는 이선생 부부와 한 팀이 되었다. 노를 젓는 사공은 노래를 불렀고, 우리는 ‘산타 루치아‘ ‘라쿠카라차’를 따라 불렀다. 물길은 천국으로 향하는 통로처럼 열렸다. 창가로 얼굴을 내민 주민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고, 반원형의 구름다리는 동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검고 날렵한 긴 배는 좁은 운하를 따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한때 만여 척이 떠다녔다던 곤돌라는 이제 관광객을 태운 사백여 척만이 남아 있다.
육지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뜻밖의 마당극이 벌어졌다. 흥이 오른 이탈리아 남자가 노래를 시작하자,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그를 붙잡고 춤을 췄다. 또 다른 이는 이탈리아 여인의 손을 잡았다. 언어는 달랐지만 박수와 웃음은 폭발하며 하나로 되었다. 삶을 즐길 줄 아는 두 민족은 그날 밤, 예술로 잠시 국경도 사라졌다. 서먹하던 일행들은 웃음 속에서 친구가 되었고, 베네치아의 달빛은 그 여운을 끝까지 길게 따라왔다.
폼페이, 멈춘 시간 속에서 발견한 일상
세계최대의 성 베드로 성당을 지나 버스는 나폴리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폼페이에 도착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하루아침에 묻힌 도시. 그러나 이곳의 시간은 멈췄을 뿐, 삶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차 자국이 깊게 파인 돌길, 빵집과 술집, 병원, 수십 명이 함께 사용하던 사우나까지. 화산재는 파괴자가 아니라 기록자로 펼쳐 보였다.
나는 이곳이 유적이 아니라 마치 오래 살다 떠나온 마을처럼 느꼈다. 그 안에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졌으니 말이다.
이곳의 시간은 멈췄는데, 인간의 삶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밤, 로마의 하늘 아래서 우리는 술잔을 기울였다. 이민의 고단한 세월을 견뎌낸 샌디에이고 여인이 레스토랑을 운영한 삶의 터전이야기에 웃고 눈물지었다. 우리들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삶을 위로했다. 지나온 험한 고통조차 다른 색깔의 삶이었기에.
귀국 비행기 안에서 잠든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이 떠올랐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는 평온이 우리 사이에 내려앉았다. 여행을 통해 나는 과거라는 늪에서 빠져나왔음을 딸에게 보여주었고,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겠다는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을까.
아이의 얼굴 위로 내려앉은 평화는 우리 모녀의 심연에 판 샘이다. 삶이라는 축제를 한동안 연습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