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17. 히틀러의 다하우 수용소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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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히틀러의 다하우 수용소

바이마르를 떠나 약 네 시간을 달려 남쪽의 뉘른베르크에 도착했다.

히틀러와 나치 지도부를 심판했던 전범 재판소가 있는 도시다. 그러나 그날은 문이 닫혀 있었다. 역사의 현장은 늘 열려 있지 않았다.

우리는 곧 독일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뮌헨으로 향했다. 다하우 수용소를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히틀러의 죄악으로 희생된 수많은 생명을 기억하는 일, 그것은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하우는 독일 남부에 세워진 나치 정권 최초의 강제수용소다. 유대인과 정치범, 소수자들이 집단 수용되고 말살된 장소였다.

헐벗은 벌판에 들어서자 한쪽에 박물관과 기록 영상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참혹했던 시대를 증언하는 이미지들이 침묵 속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그 앞에는 유대인의 뼈가 뒤엉킨 듯한 형상의 대형 조각상이 막사를 향해 서 있었다. 울부짖음이 형상으로 굳어버린 듯했다.

지금은 몇 개의 막사만 남기고 대부분이 허물어진 채, 넓은 빈터가 펼쳐져 있다.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들은 마치 도살을 기다리는 가축들의 집합소처럼 느껴졌다. 그 길 위에서 굶주림과 공포에 떨던 영혼들이 엎드려 흐느끼는 환영이 겹쳐 보였다.

깊숙이 들어가자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굶주린 사람들을 산 채로 태웠던 화장터였다. 내부는 핏빛 얼룩처럼 어둡게 물들어 있었다. 원한은 바닥과 벽, 천장, 그리고 불구덩이 속까지 스며든 듯했다.

그 주변에는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과 기도소가 세워져 있었다. 방문자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다 씻어낼 수 없는 멍에를 짊어진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 패전과 세계 대공황의 혼란을 틈타 독일을 구원할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그는 유대인을 사회 모든 문제의 원흉으로 몰아가며 말살 계획을 체계화했고, 1941년 이후 점령지마다 수용소를 세워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유럽 전역에 퍼진 수용소 가운데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는 그 상징으로 기억된다. 약 4년간 이어진 대학살로 희생된 이들은 600만 명에 이른다.

1945년, 연합군의 승리로 전쟁은 끝났지만 이성과 지성을 자부하던 나라에서 벌어진 잔혹함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시절, 수많은 독일의 지성인과 예술가들은 목숨을 걸고 망명을 택했고, 히틀러에 저항하다 순교한 이들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청년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를 떠올린다. 히틀러 암살 모의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투옥된 그는 “미친 자가 차를 인도로 몰고 있다면, 그를 끌어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1945년 4월 교수형을 당했다.

그의 유언은 이러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그는 지금도 살아 있는 증언자로 기억된다.

전후의 세상은 달라졌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영화와 문학으로 이어져, 잊히지 말아야 할 기억을 전한다. 『쉰들러 리스트』, 『라이프 이즈 뷰티풀』, 『피아니스트』는 깊은 연민과 아픔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 문학으로는 엘리 위젤의 『밤』이 여전히 가슴을 떨리게 한다.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 600만 명이 죽어갈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이 질문은 아직도 답을 기다리고 있다.


재일동포 작가 서경식의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또한 오래 마음에 남아 있다. 그는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고문과 수감생활을 겪은 형제의 가족사와, 홀로 살아남아 수용소의 지옥을 증언한 이탈리아 유대인 쁘리모 레비의 삶을 겹쳐 그려냈다. 레비는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생존자들이 짊어진 고통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 민족 또한 일제 식민지 시절, 저항하다 죽음을 맞은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이 참상의 현장을 직접 마주하고 나니, 약소민족의 설움과 가해자의 잔혹함이 이전보다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시시포스가 산을 오르며 돌을 굴리는 신화를 떠올린다.

살아남은 자에게 역사는 그런 무게를 지운다.


말틴 루터, 괴테,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헤세, 하이네, 브레히트, 마르크스…….

독일은 인류사에 찬란한 정신적 유산을 남긴 나라다.

그럼에도 한 광기의 지도자에 의해 십수 년간 유린되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믿기 어렵다.

오, 하나님

‘펜은 폭력에 부서지지만, 끝내 진실의 승리자 여라’

역사의 증언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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