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16. 신은 죽었고, 사랑은 혹독했네

by 국화리
신간표지.jpeg


16. 신은 죽었고, 사랑은 혹독했네

-니체의 태양, 루 살로메-

뢰켄의 들판, 천재의 첫 울음소리가


독일 라이프치히의 번잡을 뒤로하고 30분쯤 달렸을까. 지평선이 길게 누은 들판 끝에 아담한 마을 뢰켄(Röcken)이 나타났다.

"신은 죽었다"라고 선포하며 유럽 문명의 근간을 뒤흔들었던 사상가,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세상에 첫울음을 터뜨린 곳이다.

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니체의 아버지가 목회했던 소박한 교회당 앞, 마당 한가운데 선 세 개의 석고상이 나를 맞았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여인과 그 곁의 남자, 그리고 그들을 훔쳐보는 듯한 기괴한 조각 하나. 어머니와 니체, 그리고 말년의 광기에 사로잡힌 니체의 자화상이다. 벌거숭이 몸을 모자로 가린 채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니체의 상 앞에 서자, 흐르던 땀이 목덜미에 서늘하게 멈췄다. 평생을 괴롭힌 두통과 정신착란, 그리고 그보다 더 지독했던 외로움이 그 하얀 석고상 위에 엉겨 붙어 있는 듯했다.


어린 니체의 상처, 그리고 신과의 결별


기념관으로 바뀐 생가에는 니체의 총명했던 어린 시절을 증언하는 유물들이 놓여 있다. 그러나 그 총명함 이면에는 아이에게 처절한 상처가 숨어 있었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뇌질환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았고, 연이어 동생의 죽음을 꿈속에서 예견한 뒤 실제 장례를 치러야 했던 소년.

그 절망적인 순간, 소년 니체가 간절히 불렀을 하나님.


"왜 아버지를, 왜 내 동생을 데려가셨나요?"라는 물음에 침묵하는 하나님.

니체는 그때 마음속에서 신을 의심했는지 모른다. 어린 니체는 끊임없이 두 손 모으고 기도 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그는 더 이상 하느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그는 신은 죽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신이 떠난 자리에 들어온 것은 '인간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는

목소리가 들어온 것이리라.


니체의 태양, 루 살로메


니체의 삶을 가장 극단적으로 만든 것은 그의 철학이 아니라, 한 여인을 향한 지독한 짝사랑이었다. 24세에 최연소 교수가 된 천재 니체 앞에 나타난 운명의 여인이 있었다.

1882년 봄 스위스에서 21살의 루 살로메( 1861-1937)를 처음 만난 것이다.

니체는 그녀의 지성과 자유로운 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 안에서 자신의 철학을 완성할 동반자를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오해였다.

39살 노총각은 두 번의 청혼에 두 번의 거절을 당했다. 루 살로메는 니체는 너무 무겁고 고독한 스승일 뿐 함께 살아갈 사람은 아니라 생각했다.

지적 감수성과 미모로 당대 유럽의 지성들을 사로잡았던 루 살로 . 니체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나는 루살로메를 팜므파탈로 보지 않는다. 그녀는 작가로 여러 작품을 남긴 정신분석학자이다. 천재들의 뮤즈로 영향 준 세기의 최고 여성이었다. 그녀는 니체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뿐이다.


니체의 지독한 사랑의 열병과 배신감은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고전인《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탄생시켰다.

그는 작품 속 ‘일곱 개의 봉인’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아, 내가 어찌 영원을 갈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지 중의 반지인 결혼반지, 회귀의 둥근 고리를 어찌 갈망하지 않으랴. 나는 단 한 번도 내 아이를 낳고 싶은 여자를 만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여자를 제외하고는..."


여기서 말하는 ‘이 여자’는 영원이자, 곧 그가 얻지 못한 루 살로메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사랑을 얻지 못한 대가로 초인(Übermensch)이라는 고독한 이름을 얻었다.


뢰켄, 죽은 자가 산 자를 위로하네


니체의 임종을 지켰던 것은 그를 광적으로 질투하고 사랑했던 누이동생 엘리자베트였다. 그녀는 정신이 무너진 오라버니를 바이마르로 옮겨 보살폈고, 니체가 죽은 후 그의 저작들을 수집했다.

이제 니체는 고향 뢰켄의 교회 벽 아래 부모님과 나란히 누워 있다.

흥미로운 것은, 평생 신을 부정했던 그의 무덤이 아버지의 교회 마당에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신을 죽인 자를 교회에 모실 수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안내원은 다정하게 답했다.

"기독교는 이제 니체를 심판하는 대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니체가 공격했던 것은 갇힌 교리와 위선이었지, 인간을 향한 참된 사랑은 아니었음을 교회는 깨달은 것이리라.


뢰켄의 들판은 평온했고, 그가 그토록 꿈꾸었던 초인이 살기에 충분히 광활했다.

니체는 비록 한 여인의 사랑을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 고통을 깎아 우리에게 '자신을 극복하는 법'을 선물했다. 사랑에 아파하고, 신의 침묵에 절망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뢰켄의 바람 속에서 니체의 낮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의 고독을 사랑하라.

그리고 고독 속의 그대만의 신을 창조하라“

이전 16화신간15. 유럽고전주의 꽃, 바이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