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에게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된다는 입학 통지문을 받고
식구들은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저렇게 쬐그많고 약헌것을 학교에 뭣 헐라고 보내?'
일 년만 더 있다가 보내자는 식구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영희는 학교에 가겠다고 떼를 썼다.
영희는 동네에서 고무줄놀이도 하고, 삔 치기도 하면서 놀았던 친구들하고 꼭 같이
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영희는 큼지막한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언니를 따라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공부도 제법 잘하는 영희는 선생님들한테도 예쁨을 받았다.
국어책 한 권을 통째로 다 외워버려서 동네 사람들이
구경하러 오기도 했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친구들은 다 밭으로 일하러 갔고
혼자 심심해지면 영희는 집뒤에 있는 산으로 갔다.
봄이면 초록잎들이 넘실대고, 여름이면 메뚜기, 여치가 뛰어다니는
자그마한 산이 영희의 놀이터였고 친구가 되었다.
그때부터 영희는 자연이 좋았고, 초록식물들이 좋았다.
학교에서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발표도 잘 못하고
얌전한 모범생으로 지내는 조용한 아이였다.
학년이 올라가고 새 학기가 되면 각 반별로 환경정리를 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은 창문 커튼을 해오라고 하셨다.
옷도 제법 잘 입고 공부도 곧잘 하는 영희를 보고
집이 잘 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영희도 영희네 집이 동네에서 가장 잘 사는 줄 알았다.
자손이 귀해서 혹여라도 잘못될까 봐 영희엄마는
영희에게 예쁜 옷, 예쁜 신발을 아낌없이 입게 해 주었다.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가끔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반 친구들하고
함께 도시락을 먹을 때가 있었다.
선생님은 도시락 반찬을 넉넉하게 싸 오셨고,
그 반찬을 아이들의 밥 위에 올려 주셨다.
영희의 밥 위에 올려진 가지볶음은 난생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밥 위에 쪄서 무친 가지나물만 먹었었는데,
고소하고 달착지근한 가지볶음은 영희의 입맛에는 안 맞았다.
영희는 선생님이 좋았다.
선생님 앞에서는 부끄러워서 말도 잘 못했지만,
풍금을 치면서 노래 부르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영희는 커서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영희는 앞마당에 있는 화단을 좋아했다.
장미, 달리아, 족두리꽃, 칸나, 과꽃, 채송화, 접시꽃 등
영희 아빠는 이름조차도 모를 꽃들을 솜씨 좋게 가꿔나갔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영희를 위한 것이었고,
영희는 꽃을 보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영희네 집은 동물농장이 따로 없었다.
꼬꼬댁 거리며 암탉 뒤를 쫓아가는 수탉,
배고프다고 꿀꿀거리는 돼지형제들,
큰 눈망울만 연신 꿈벅이며 되새김하는 암소,
꽥꽥거리며 줄지어 따라다니는 오리들,
귀를 쫑긋 세우고 깡총이는 빨간 눈 토끼,
여기에 영희만 보면 반갑다고 달려드는 백구 가족들까지
영희의 발걸음이 신이 나서 총총거렸다.
이렇게 귀하게만 자란 영희에게도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영희는
아무래도 큰 병에 걸린 것 같다.
다음 이야기는 제4화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