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무거운 가로등의 근무일지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은
겨울에는 근무시간이 길다.
세상을 환하게 비추며 돌고 온
둥근 해는 노을빛을 남기며 퇴근했다.
가로등은 태양의 근무 일지를 들여다본다.
낮에 무슨 일이 이렇게나 많았었나?
깨알같이 작은 글씨들이 하얀 종이 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동해바다의 출렁이는 파도 위를 건너는
갈매기가 새 식구를 얻었단다.
새우깡 낚아채기 연습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태양에게까지 전해왔다.
붉게 떠오르는 태양이 시퍼런 바닷물 위에
떠올라 밀려오는 파도에 사정없이 흩어져 간다.
정동진 백사장 위로 달려가는 여자의
뒤를 쫓는 남자의 발걸음이 신나서 춤을 춘다.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100미터 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왁자지껄 모래 밭을 헤치며
멀리 사라져 간다.
사연 많은 하루가 저물어 가고
거리의 가로등도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어둠을 밝히고 서 있다.
학원에서 나오는 아이의 축 처진 어깨 위로
둥근 가로등이 토닥토닥 환하게 비춰준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오는
지하철역 앞 키 큰 가로등 불빛이 지친
발걸음을 따라간다.
정거장을 지키는 네모난 가로등이
가슴에 번호를 새긴 덩치 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쓰다듬어 준다.
저녁 운동 나온 사람들 사이로 총총
걸어가는 강아지 털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아파트 경비실 앞 가로등도 큼지막한
둥근 모자를 쓰고 말없이 어둠을
몰아내고 서 있다.
입이 무거운 가로등은 보고도 못 본 척
수많은 사연들을 담고
서서히 퇴근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