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뿌리의 말없는 외침

사패산에도 봄이 오고 있다

by 글나라

안골 길 들머리를 지나 사패산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목적지는 해발 552미터

정상으로 향하는 사패산 산행이다.


사패능선을 타고 올라 원점회귀로 내려오는

왕복 3시간 20분 남짓의 비교적 평이한 산행이다.


지난번에는 우이령길을 걸었으니, 이번에는

가보지 못한 안골길–사패능선 코스를 택했다.


같은 산이라도 길이 달라지면 풍경도,

산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안골계곡을 지나자 참나무 숲이 이어졌다.

겨울을 건너는 숲은 비워냄으로

더 단단해져 있다.


찬란했던 잎사귀들은 모질게도 바닥에

떨어져 두툼한 이불이 되었다.

신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도토리를

맺는 나무들을 모두 참나무라 부른다.


이름은 달라도 한 뿌리처럼 이어진 숲은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산길은 봄을 맞이하려는 나무들의 기지개

켜는 소리에 맞춰 나긋나긋하게 펼쳐진다.


그때 문득 땅 위로 불쑥 드러난

나무뿌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흙이 씻겨 내려가자 드러난 뿌리들은

위태롭게 공중에 걸쳐 있었다.


등산객들은 무심히 그 위를 밟고 지나간다.


나무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야 물과

양분을 빨아들일 수 있다.

튼튼한 뿌리가 받쳐주어야 거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드러난 뿌리는 강해지기 위해 밟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나는 산에서 한 발 한 발을 더 조심하게 된다.


발밑의 작은 생명까지 살피는 일이 결국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균형을 잃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무심한 발걸음 하나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산은 알고 있을까.


능선을 따라 오르자 시야가 확 트이고

시원한 바람이 맞아 준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한 폭의 수묵화 같다.


북한산 국립공원의 북쪽 끝자락에 선

사패산 정상이다.

동쪽으로는 수락산을, 서남쪽으로는

도봉산을 끼고 묵직한 산그림자를 드리운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이 있는 풍경이다.

겨울 끝자락의 산은 색을 비워낸 대신

침묵과 여백을 채워 넣었다.


아직 삭막한 빛이 감도는 사패산이지만,

봄이 오면 이 능선에도 연둣빛 숨결이 번질 것이다.


그때 다시 이 길을 걸으며 또 어떤 풍경과

만나게 될지 기대하며 하산길을 서둘렀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산을 오르는

나는 매번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