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절대 둘째는 없어.

어떤 일이든 장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

by 구르뮈

첫째가 일곱 살 일 때, 자기도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전까지는

'나는 동생 필요 없어. OO이가 있잖아. 같이 안 살아도 동생이 있는데 뭐.'

하며 멀리 살아서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보지 못하는 외사촌동생이라도 자기는 동생이 있다며 괜찮다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라니!


같이 놀던 친구들이 모두 동생이 생기는 시기였다. 유치원에 같이 입학했던 외동 친구들이 여섯 살 되는 해에 모두 동생이 생겼다.


결국 외동은 우리 아들 혼자였다.


그래도 나는 둘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컸다. 남편의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기에 내가 직장을 꼭 다녀야 했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면 한 명이 충분했다. 그래도 남편은 혼자가 안쓰러운지 생기면 하나 더 낳자며 피임을 하지 않았다. 나는 요리조리 피해 가며 아기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살짝 숨기고, 남편 의견에 동의하는 척했었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첫째는 더더 동생을 원했다.


더 많은 친구들이 동생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첫째는 '왜 나만 혼자야'라는 질문을 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아팠다. '내 욕심으로 아이를 외롭게 키우는 것인가' 속으로 내내 같은 질문을 했었다.


그래도 늘 답은 이기적 이게도 '아니야. 지금이 딱 좋아.'였다.


그러다 2020년 1월, 임신이 되었다.


우린 그쯤 경제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자주 여행을 다녔고, 그 기분 좋은 상황에 조용히 아이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임신 사실을 알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우리 여행 어쩌지?' 그리고 두 번째가 '일은 어떻게 하지?'.


정말 한심스러운 생각이었다. 세 식구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 티켓팅을 해 놓은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일은 쉽게 자리를 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좋은 이 시점에 임신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이 생겼다. 아쉬움이 컸었다. 반가움보다.


그 사실을 눈치챈 건지... 그 아이는 온 사실을 안지 일주일 만에 가버렸다.


그렇게 보내고 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임신 소식에 양가부모님은 물론, 남편 그리고 아들까지 모두 행복해했었다. 그 표정을 보고 나니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나 후회하고 또 후회를 했었다. 아이가 그렇게 간 것이 모두 내 탓 같았다.


다니던 직장을 결국 정리했다. 마침 코로나도 겹쳐서 첫째가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 있기도 했었고, 남편의 수입도 늘어서 모든 상황이 내가 쉬기에 충분히 괜찮았었다.


그리 아쉬워했던 모든 것들을 결국 못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가족여행도, 그리고 딱 좋았던 내 일도. 내 생각의 어리석음을 또 한 번 느꼈다.


결국 둘째를 낳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쉽지 않았다. 배란일을 맞춰서 관계를 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인공수정까지는 차마하고 싶지 않았다. 첫째가 없다면 모를까. 주변에서 자식은 욕심부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리는 사람이 많았기도 했다.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다 보니 힘이 많이 들것이라고. 그렇게 자연임신이 되길 바라며 8개월을 노력했다.


6개월 시도해 보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결국은 8개월까지 갔었다. 그쯤 되니 지치기 시작했다. 임태기의 한 줄이 이토록 좌절을 맛보게 할 줄이야. 몇 년씩 아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임신을 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달에 한번. 이건 결코 많은 기회가 아니다. 그래서 아이는 기적인 것이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고 공식적으로 포기 선언을 한 그 달,

지금의 둘째가 기적처럼 온 것이다.


아이는 정말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를 알았다. 갖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욕심을 부린 것이지. 욕심을 버리니 이렇게 자연스럽게 찾아온 것이다.


- 이건 여담이지만, 그 달에 임신을 포기하고 살을 빼겠다고 3개월 필라테스를 등록했었다. 그리고 3주 정도 열심히 다니던 중에 임신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운동을 해서 몸이 좋아져서 생긴 거라고. 나머지 두 달은 못 다녀서 돈을 날렸지만, 그 돈 아까워하지 말라고. 흐흐. 맞는 말 같다. 운동을 해서 몸에 좋은 기운이 생겼나 보다. -


그래서 첫째 10살이 되는 해에 둘째를 낳았다. 내 나이 41살이었다. 9년 세월 동안 달라진 산부인과 인식 덕분에 나는 노산이 아니었다. 그렇게 아이 한 명을 더 낳았을 뿐이었는데, 마흔하나 다둥이엄마가 되었다.


그렇지만 늦둥이 둘째, 임신 기간은 순탄하지 않았다.








금요일 연재.

초보작가의 초보가 아닌 초보육아일기.

아이 둘은 처음이라.

두근두근, 구르뮈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