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주 1일, 결국 빛을 보았어.

최선을 다했던 나의 일주일.

by 구르뮈


아침부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둘째 임신 27주. 피가 보였다.


둘째 임심 전에 이미 한번 아이를 잃어 본 적이 있어서 불안했다.

첫째를 학교에 보내고 바로 남편과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조산기가 보입니다. 이미 자궁문이 조금 열렸어요.'

"그럼 어떻게 하나요?"

"인큐베이터가 있는 대학병원으로 연결해 줄게요. 가서 진료를 받아보셔야 될 것 같아요."


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7개월을 뱃속에서 키운 아이가 또 잘못되면 어쩌나 두려웠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병원을 알아보는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서 간단한 검사를 받았다.


'괜히 운동한다고 움직였나?'

'그래서 자궁문이 열려 버렸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임신 초기부터 안정기가 되기 전까지 조심하다, 안정기 접어들면서 운동을 했었다.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운동장 걷기를 시작했었는데...

그 운동도 너무 심했던 것인가. 후회가 폭풍처럼 밀려왔다.


3년 같은 30분이 지났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학병원에서 나와 아이를 받아 준다고 했다.


긴장 속의 차 안.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아직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둘 다 최선을 다해 침착했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바로 들어갔다.

그리고 입원 수속을 밟고, 입원 한 곳은 <고위험산모 입원실>


"산모는 최대한 누워서 움직이면 안 됩니다. 최소 28주는 엄마 뱃속에 있어야 아기가 덜 위험해요."


28주면 아이가 7개월을 꽉 채운 시점이다.

일주일 이상은 버텨야 했다.


엄마 뱃속에서의 하루가 인큐베이터에서의 일주일이라고 했었다.

최대한 엄마 뱃속에 있어야 아이가 인큐베이터 생활을 짧게 할 수 있단 말이다.

그래서 버텼다. 내내 누워만 있었다.



남편은 집에서 구운 달걀을 해왔다.(누워서 먹을 수 있는 가장 영양이 가득한 음식이라며)

병원에서 주는 밥을 혼자 먹을 수가 없었기에 남편이 가져다주는 음식만 먹었다.

남편은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와 아이를 돌봐주었다.

그래서 나도 누워서 좋은 생각만 하면서 버텼다.

동화책도 읽어주고, 넷플릭스에서 웃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최대한 행복한 생각만 했었다.


그래도 출혈은 줄어들지 않았고 점점 상태가 심해져, 겨우 일주일을 버틴 월요일 아침.


'수술합시다.'


딱 28주를 채우고, 29주 1일 둘째는 세상밖으로 나왔다.


수술은 하반신 마취로 시작해서 전신마취로 이어졌다.

하반신 마취 후 아기를 꺼내 바로 인큐베이터 안으로.


아기 얼굴을 보지 못했다. 가는 울음소리만 들렸던 것 같다. 고개를 돌려 아기가 담당 소아과 의사 선생님께 전해지는 모습을 본 기억만 있다. 그리고 하염없이 '우리 아기, 우리 아기' 했었다. 다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랬더니 산부인과 담당 선생님께서

'아기 괜찮아요. 이제 전신 마취 할게요. 걱정 말아요'

그 소리와 함께 잠이 들었다.


눈물의 시간이 찾아올 줄을 그땐 몰랐다.








금요일 연재.

초보작가의 초보가 아닌 초보육아일기.

아이 둘은 처음이라.

두근두근, 구르뮈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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