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생일, 이른둥이
수술하고 하루가 지났다.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나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남편은 아이 면회 시간에 맞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작은 아이가 인큐베이터 안에 있다.
그 작은 몸에 주삿바늘이 다닥다닥 꽂혀있었다.
내일은 아이를 꼭 보러 가겠다고 몸을 최대한 움직이며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면회를 다녀온 남편의 표정이 좋지 않다.
병실에 누워서 29주에 태어나서도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내내 블로그 검색만 했었다.(사실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만 블로그에 그 기록을 남긴다.)
그래서 남편의 표정을 보자 심장 두근거렸다.
"무슨 일인데?"
"아이가 똥을 못 눈데. 그래서 배가 빵빵해. 오늘 밤까지 지켜보고 안 되면 내일 수술해야 된데..."
또 가슴이 무너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마조마한 가슴 누르면서 긍정적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이 무슨.
이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손바닥만 아이가 수술이라니... 수술이라니...
그 순간 다른 기도는 필요가 없었다.
누워서 기도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수술 후 회복도 되지 않은 몸이라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고, 식사는 물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눈물의 기도만 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왔다.
남편을 급하게 호출하는 전화였다.
남편을 보내고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더디 흘렀는지 모른다.
'제발 아무 일 없어라. 제발 좋은 소식이어라. 제발...'
기도가 닿았다. 하루 종일 울면서 매달린 내 기도가 닿았다.
이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 한마디란 말인가.
선생님께서 계속 신경을 써서 관장을 하고 돌봐 주신 덕분에 아이가 똥을 눈 것이다.
그 뒤로 우리 둘째가 똥을 눌 때마다 얼마나 행복한지. 지금도 '아이고 똥 잘 눴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행히 둘째는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나는 다음 날 아픈 배를 부여잡고 둘째를 만나러 갔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기특하고 또 기특해서, 처음 둘째를 만날 날은 눈이 퉁퉁 부은 날이 되었다.
그러게 퇴원을 하고, 나는 50일 동안 둘째 면회를 매일 갔었다.
갈 때마다 간호사들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논다고 제일 예쁘다면서 둘째 칭찬을 엄청 했었다.
그래서 가는 길이 힘겹지 않았다.
매일 설레는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날, 그리고 처음으로 둘째를 품에 안아 보던 날 그 모든 순간의 기쁨을 잊을 수 없다. 모든 검사에도 매번 통과를 받았던 순간도 잊을 수 없다.
50일 동안 신생아중환실에 다니면서, 어제는 보였던 아기가 다음 날 면회시간에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마음이 아주 많이 아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2021년 5월 17일 태어난 날.
2021년 7월 7일 집으로 온 날.
2021년 8월 2일 분만 예정일.
둘째에게는 이렇게 세 개의 생일이 생겼다.
최근에는 극소저출생체중아의 경우 약 85%, 초극소저출생체중아는 약 70%의 생존율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비해 아주 높은 생존율이다. 그러니 이른둥이 출산으로 걱정하고 있는 엄마가 있다면 '아이를 믿고 기다려줘라.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느낀다. 엄마가 단단하면 아이도 단단하게 잘 버텨낼 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른둥이 부모들 아자아자!!
그리고 정부 지원도 좋다. 50일 동안 인큐베이터에 있었어도 퇴원할 때 비용이 30~4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내 병원비보다 적었다 ^^;;;) 수술과 다른 이벤트가 없어서 비용이 적었던 것도 있지만, 그래도 정부 지원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다섯 살인 지금도 병원비와 약값 감면 혜택을 받고 있다.
일찍 태어나도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에 감사하며 예쁘게 잘 키워보자.^____^
금요일 연재.
초보작가의 초보가 아닌 초보육아일기.
아이 둘은 처음이라.
두근두근, 구르뮈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