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말입니다.

_알면서도 되지 않는 것

by 구르뮈


일을 하면서 눈치껏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찔끔찔끔 찔리네요.


빚도 있는데, 고액의 월세를 내면서 신축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차는 사천만 원이 넘는 대형 SUV를 타고 있어요. 아빠가 준 준중형 세단도 하나 더 있습니다. 돈을 벌 때 아껴야 했는데, 세이노 말처럼 많은 돈을 잃고 나니 저 몰래 빚을 냈더군요. 남편이. 그래서 둘이서 버는 돈의 5분의 2은 빚을 갚는 곳에 쓰고 있고, 5분의 1은 월세를 내고 있습니다. 결국 5분의 2로 생활을 하는데 돈을 철저하게 아끼지 않으면 돈을 모을 수가 없어요. 월세를 낸다는 말은 전세금도 없다는 말이죠. 아. 매일 눈앞이 캄캄한데 캄캄하지 않은 척하면서 삽니다.


이게 말이 되냐고요.


이 사실을 아무도 모릅니다. 남편과 저 둘만 알고 살고 있습니다. 양가 부모님은 전세금이 여전히 존재하는 줄 알고 있고 그 누구도 우리가 이런 빚 속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세이노의 말에 따르려면 우리는 커밍아웃을 해야 해요. 집도 더 허름한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고, 가지고 있는 차도 처분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의 빚을 더 빨리 갚아 내겠죠. 그런데 부모님의 마음에는 못을 박아야 합니다. 그래서 못해요.


이게 말이 되냐고요.


돈이 없다는 것은 치부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절대적 약점이죠. 좋은 집과 좋은 차, 깔끔한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기죽으면서 살고 싶지 않아서 모든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내가 어떨 땐 아주 많이 초라합니다. 기죽기 싫어서 여전히 잘 사는 척하는. 이게 정말 말이 되냐 싶을 정도로 한심하지요.


다 알지만 참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버텨 볼 생각입니다. 시간이 흘러 이 거짓된 현실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굳이 부모님 속 상하게 해 가면서 주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이 가난이 없던 일처럼 되지 않을까요?


희망사항입니다. 그래야 지금을 버틸 수 있으니까요.


맞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한심스러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저도 제가 한심하거든요. 버티다 더 무너지면 가난을 드러내는 날이 오겠지요. 그런데 무너지고 싶지 않습니다. 이 가난을 최대 버티고 버텨서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러니 지금을 잘 살아내 볼게요!!

알면서도 되지 않는, 미비한 자존심을 지키면서.

최선을 다해 돈을 벌고, 아끼고 빚을 갚으면서.

그렇게 가난하지 않은 척하면서 살아 보렵니다.

일단은 말이죠.


구르뮈_치부를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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