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의 맏며느리

여느 집 며느리의 이야기

by 구르뮈


혐님…. 이혼하신다던데...

그렇게 됐어. 잘 지내, 동서…


나는 그렇게 10년 전에 맏며느리가 되었다.


친정엄마는 8남매의 둘째지만 장남인 아빠와 결혼을 하셨다. 막내 도련님은 아직도 학생이었던 집안에 시집을 갔었다. 제사와 차례를 포함해서 여섯 번의 제사 음식을 해야 했다. 일 년 중 반은 음식을 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며느리가 들어오고 그다음 해에 바로 모든 제사와 명절을 없애 버리셨다. 본인 며느리에게는 제사음식을 시키지 않으시겠다고. 그래서 나는 장남이 싫었다.


어릴 때부터 차남과 결혼을 하겠다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이혼이라.


이혼이라는 변수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차남이라는 조건만 가지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것은 아니만, 아무튼 나의 이상형 조건 중의 하나가 차남인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맏며느리가 되어버렸다.


형님이 계신 오 년은 정말 좋았다. 형님은 나의 비해 헌신적으로 시댁에 잘했다. 음식부터 뒷정리까지 어머님 곁에서 참 잘했다. 덕분에 나는 쉴 여유가 많았다. 물론 나는 아이가 있었다. 형님은 없었다.


먼저 결혼한 형님은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꼭 그 이유만으로 이혼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했다. 첫째가 어린 시절에 새내기 며느리는 형님 덕분에 아주 편했다. 그래서 이혼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보다 슬펐다.


이제 내가 맏며느리가 되어 버렸구나.


그렇게 벌써 10년이 흘렀다. 이제 전은 우습게 부쳐버리는 베트랑 며느리가 되었다. 도와드려야 할 것은 알고 도와드리고,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은 살짝 빠져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꾀가 많은 며느리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세월의 흐름이다. 세월이 흘러 나는 꾀가 많은 며느리가 되어버렸는데 어머님은 기력과 체력이 달리는 노모가 되어버리셨다. 연세가 들어가시면서 점점 음식 하시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음식 준비를 혼자 할 자신도 마음도 없다. 향후 몇 년 안에는 음식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 텐데...... 아버님의 완강한 고집에 제사가 사라지지도 않을 것 같다.


아주버님, 이제 제사 이런 거 고만해요.

안 됩니더. 내 죽기 전에는 안 됩니더.


환갑이 지나고 아이들이 출가하면서 점점 큰 집에 오시는 횟수를 줄이신 작은어머님께서 정말 오랜만에 오셔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아마 오랜만에 와서는 왜 그런 말을 하나 기분이 상하신 아버님께서 지르신 말씀 같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아버님 말씀 한 마디에 KO패를 당한 느낌었다.


제사는 사라지지 않겠구나! 윽!


평일 제사는 챙기지 못한 지 오래되었고, 명절 음식만 거의 하는데도 나는 자신이 없다. 금세 일 년 일 년이 흐르고, 돌아서면 추석과 설이 나가 온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나도 두려운데 어머님과 제사 음식을 떠올리면 답답한 걱정이 밀려온다.


명절을 앞둔 날이면 근심이 생겨나는 나는 여느 집 차남의 맏며느리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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