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부모, 그리고 딸 <하나>

딸:다섯_엄마는 내 생일을 잊었다

by 구르뮈



재작년 여름, 내 생일.


생일에 엄마는 늘 아침부터 미역국을 먹었냐는 전화를 하신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녁이 되도록 연락이 없는 것이다.

바쁘신가 싶어서 저녁에 전화를 먼저 했더니, 아빠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다는 것이다.


그날, 암이라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 뒤로 내 생일은 아빠의 암을 알게 된 첫날이 되었다.






참으로 인생 얄궂다.

내 생일, 아빠의 암을 알게 되다니.

이제 난, 생일날 엄마의 전화를 기다리지도 않고, 생일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내 생일이 뭐, 아빠가 아픈 게 먼저 지.

올해 생일도 그랬더니… 엄마가 너무 미안해하셨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아. 오히려 낳아줘서 내가 더 고마워.






그렇게 아빠의 투병이 시작되었다.


나의 생일날 암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고, 그 뒤로 바로 강남삼성병원에 진료 예약을 잡았다.

바로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 다른 병원을 알아보려 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큰 병원.


큰 병에 걸리면, 큰 병원에 집착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한 달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병원에 입원 전, 코로나 검사가 필수였던 시절. 하필 아빠가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코로나 검사 양성으로 예약이 미뤄지면서, 또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 결국 아빠는 지인분의 소개로 강남상성병원에서 강북삼성병원으로 진료예약을 새로 잡으셨다.


아빠의 코로나는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도 모르고 끝난 코로나. 그나마 다행이라 위로했었다. 치료 중에 걸리지 않은 것이 아니냐며. 코로나 완치 후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다.


결국 폐암 3기 말 진단을 받았다.






아빠의 표적 항암이 시작했다.

1차는 견딜만하신 지 괜찮았다. 2차부터는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3차부터는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잘 드시지 못하니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걷는 것도 힘이 없었다.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까지 하셨다. 너무 힘들었다. 단 몇 개월 만에 이토록 몸이 상할 수 있다니. 항암은 정말 독했다.


나는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항암을 위해서 서울에 올라가실 때는 포항에서 기차를 타고 가셨고, 내려오실 때는 모시러 갔는데 것도 내가 운전을 잘하는 것이 아니어서 남편이 모시러 갔었다. 힘드신 날은 올라갈 때도 남편이, 내려오실 때도 남편이. 남편이 시간이 되지 않을 땐 아빠의 형제, 혹은 남동생이.


내가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드실 음식을 해서 보내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입맛이 없다고 하시니 드시고 싶은 것을 만들어 보내드리거나, 배달해 드리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아빠가 아픈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딸.

기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절대 아빠 앞에서 울지 않는 것.






내 나이 마흔을 넘어가니, 부모님이 아프기 시작했다.

우리 아빠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동창 아빠도 암 진단을 받으셨고,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아저씨도 치매 초기 진단을 받으셨다.

나만 세월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들도 세월을 맞이하는 것이다.






토요일 연재.

딸, 엄마, 그리고 나로 살아가는 마흔다섯_구르뮈.

삶의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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