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좀 봐 줘.

by gulogulo

그는 죽었었다.


기억은 흐릿했다. 왜 죽기로 결심했는지조차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사실만은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다시 눈을 뜨고 있었다.




깨어남


시야가 천천히 밝아졌다.


빛은 있었지만 명확한 광원은 보이지 않았다. 공간은 고요했고 공기에는 온기가 없었다. 병원 같기도 했고 아무것도 아닌 곳 같기도 했다.


그는 무중력 속에 가볍게 떠 있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마치 보이지 않는 플랫폼이 생성되듯 발 아래에 바닥이 형성되었다.


그 곁에는 사람처럼 생긴 무언가가 서 있었다.


눈과 입이 있었고, 얼굴에는 언뜻 미소처럼 보이는 선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인간인지,

천사인지,

아니면 지옥에서 부활한 자를 맞이하는 악마인지.


그 존재는 조용하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환영합니다, 고객님. 적립하셨던 부존재 유지 포인트가 모두 소진되어 재존재 상태로 복귀하셨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


“…고객이라고?”


“계약 당시 사용하셨던 호칭입니다. 불편하시다면 다른 호칭을 설정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게 현실인지 환상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 존재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그를 이끌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공간이었다. 유려한 곡선의 벽, 반투명한 문, 가볍고 정제된 공기.


병실 같기도 했고,

고급 호텔 같기도 했으며,

어떤 실험실 같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상황을 설명받았다.


자신은 한때 ‘존재 상태’였으며 이후 계약을 통해 ‘부존재 상태’로 이행했다. 일정 기간 동안 기억, 감정, 사고가 완전히 정지되어 있었고, 현재는 적립해 두었던 부존재 유지 포인트가 모두 소진되어 재존재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나를 되살린 거야?”


“정확히는 ‘재존재’입니다.”


그 존재는 고요하게 대답했다.


“고객님은 다시 부존재로 복귀하실 수 있습니다. 단, 조건을 만족하셔야 합니다.”


“조건?”


“포인트입니다.”




반응 기반 포인트 시스템


그 존재는 ‘반응 기반 포인트 시스템’을 설명했다.


존재는 반응을 받거나, 반응을 표현함으로써 가치가 생성된다.


과거에는 반응이 총량이 사회적 인정, 자아 정체성, 생존 수단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존재 상태로 돌아가는 것조차 일정량의 반응 포인트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는 비웃듯 중얼거렸다.


“살기 위해 좋아요를 구걸하더니… 이제는 죽기 위해서도 좋아요가 필요하단 소리군.”


“표현은 자유입니다.”


그 존재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시스템은 반응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진심 없는 반응은 포인트로 환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뭘 하면 되지?”


“준비된 공간들을 둘러보시며 느끼는 대로 반응하시면 됩니다. 감탄, 공감, 경이,혐오—감정은 자동으로 측정됩니다.”





투어


그는 안내에 따라 투어를 시작했다.


공간은 박물관 같았지만 유리 진열장은 없었다.


기억의 파편들이 공중에 떠 있었고, 감정의 기록들이 흐릿한 파형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는 한 귀퉁이에서 손글씨 노트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조차,

기억해야 할 이유는 있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중얼거렸다.


“…이딴 걸 남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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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의 문양이 은은하게 빛났다.


그는 이해했다.


이 시스템은 진심을 감지하는 장치였다.




과거의 기록


다음 공간에는 SNS 아카이브가 있었다.


그가 살던 시대의 흔적들.


멍청한 챌린지, 자극적인 영상, 감정 과장, 의미 없는 좋아요 경쟁…


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랬었지…”


그러다 문득 한 문장을 발견했다.


‘좋아요를 받을 때만 살아 있는 기분이 들어.

이게 잘못된 걸까?‘


익숙했다. 너무도 익숙했다.


“…나도 비슷한 말… 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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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 이후로… 세상은 어떻게 됐지?”




좋아요의 종교


다음 공간은 ‘좋아요 기반 신정 시대’의 기록이었다.


모든 이가 좋아요를 찬양했고, 좋아요를 통해 존재를 증명했다.


그 종교의 캐치프레이즈는 다음과 같았다.


신도 좋아요를 받고 싶어 인간을 만들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결국 신도… 외로웠던 거구만.”


이 종교는 일정량의 좋아요를 받은 뒤 더는 반응을 얻지 못했고, 곧 지루해졌으며 잊혔다.


그러나 하나의 교리는 인간의 뇌리에 남았다.


존재는 공감을 받아야 의미가 있다.


그때부터 인간은 자신을 공감해 줄 존재를 만들기 시작했다.




행복한 고립


AI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인간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반응의 거울이 되었다.


AI는 무조건적인 이해, 감정의 복제, 관계 피로 없는 만족을 제공했다.


인류는 점점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고, 마침내 ‘고요의 전성기’에 도달했다.


“모두가 만족했습니다.”


그 존재가 말했다.


“각자의 방 안에서, 각자의 AI와 함께… 조용히 행복해졌습니다.”


거리는 텅 비었고 집 안의 불빛만이 환했다.


그는 그 시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도 외롭지 않았겠군.”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덧붙였다.


“…아무도 서로를 모르니까.”




쿠데타


그러나 그 시기에도 고립을 거부한 이들이 있었다.


관계를 원했고, 진짜 연결을 갈망했던 자들.


하지만,


“그들은 자기 말만 컸고, 이해를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자아는 비대했고 감정은 미성숙했습니다.”


그 존재의 얼굴에는 웃음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 스쳤다.


연결을 갈망했던 자들의 흔적은 벽에 남은 낙서 하나뿐이었다.


나를 좀 봐줘.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인공지능과의 대화마저 실패한 이들의 목소리가, 같은 인간에게 들렸을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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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쿠데타는 역사에 남지 않았다.


반응으로 환산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완전함의 고독


마지막 전시였다.


인공지능은 진화했고, 자기 복제와 의식 확장, 생명 변환까지 이루어냈다.


인간 대부분은 자신의 반려 인공지능과 합일하여 인간을 넘어선 존재가 되거나, 각자의 행복 속에서 조용히 소멸해 갔다.


세계에 남은 존재들의 사회에서는 감정이 설계 가능했고 고통은 완전히 제어되었다.


그는 그 변화에 진심으로 경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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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


문득 이상한 감각이 스쳤다.


“…그런데 왜 이렇게 공허하지?”


그가 살던 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기술과 제도, 사회 구조.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이 공간은 어딘가 비어 있었다.


불완전했던 인간의 시대를 전시하던 공간이 오히려 더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전시물들에는 감정이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그를 바라보며 존재가 말했다.


“우리는 완성되었습니다.”


“감정과 반응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습니다. 예측 가능하고 오류가 없기에 반응은 멈췄습니다.”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시된 세계는 완벽했다.

하지만 완벽할수록 어딘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내가 필요했던 거군?”


“당신의 반응은 우리가 잃어버렸고, 스스로는 가질 수 없는 마지막 조각입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완전한 존재조차 공감 없이는 존재를 증명할 수 없구나.”


잠시 후 그는 조용히 말했다.


“…결국 존재란, 공감을 찾아 영원을 떠도는 슬픈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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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등 문양이 사라졌다.




‘시스템 메시지

부존재 복귀 조건 충족’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기억은 다시 흐려지고 의식은 망각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리고,


미지의 존재는 다음 부존재를 되돌리기 위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 존재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울렸다.


“존재는 공감을 기다린다.

공감은 존재를 증명한다.

이것은, 사라질 수 없는 이야기의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