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람이 싫다.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싫어진 지 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 친척, 친구, 지인 등등. 아 물론 나도 있지.
그리고, 그들을 적어도 남들이 하는 만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내 눈앞에 인류를 멸종시키는 버튼 같은 게 있다면, 별 망설임 없이 누를 것 같다.
뭐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난 좀 뚱뚱하고,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다.
운동도 많이 하는 편이라 근육량도 많고, 힘도 좋다.
그리고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오늘도 출근하기 위해서 지하철을 탔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출근시간대엔 사람이 항상 가득 차있다.
줄 서있던 사람들과 눈치게임을 좀 하다가 지하철이 들어오면, 그때 승강장에 내려온 사람들도 마구 뒤섞이며 좁은 틈 사이로 내 몸을 끼워 넣는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 도중에 지하철 문은 닫히고, 차 안의 승객들이 밀려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잡고 버티던 것들을 놓으며 긴장상태가 일시적으로 이완이 된다.
그러면 곧, 어떤 멍청이의 가방이나 옷, 손가락 등을 놓아주기 위해서 문이 다시 열리고, 순간 휘청이는 사람들은 다시금 허둥지둥 여기저기 잡고 밀려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타고난 후엔, 목적지역 근처까지 한 번도 열리지 않는 방향의, 탑승구 옆 철봉이 있는 곳인데, 타자마자 자리를 잡으면서 단단히 붙들고 있던 봉을 여전히 꽉 잡고 있다.
문이 다시 열릴 줄 알았거든, 보통은 한두 번 더 열렸다 닫히고 출발하니까..
물론 내 몸이 큰 편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최소의 부피를 차지하게끔 팔을 접고 어깨를 접고 서 있다...
그러고 있자면 출근시간대의 온갖 사연 가진 승객들을 가득 채운 지하철이 뒤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달리기 시작한 차 안에서 자리가 잡힌 승객들은 이내 각자 할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조금 큰 숨을 쉬면 서로 피부에 숨결의 온기가 느껴질 정도의 거리를 두고 다닥다닥 붙은 승객들은, 또한 필사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책은 이 공간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그저 핸드폰을 한 손에 겨우 들고선 그 안에서 뭔가를 보거나, 이어폰으로 귓구멍을 막고, 눈을 감고선, 깊은 땅 속에 생매장된 상상이라도 하는지 모르지...
조금 시간이 더 지나고, 보통은 음악을 듣는 쪽인 나는, 오늘 무슨 이유인지 그럴 수 없는 상태가 된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퀴퀴한 냄새를 맡고 고개를 든다.
담배를 끊는 게 아니었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후로 코가 더 좋아졌거든,
정신을 집중할 뭔가가 없는 상태에서는 이 차량 안에 가득 찬 온갖 사람들의 온갖 냄새를 맡아야 한다.
바로 코 앞에 있는 노인이 나름 매너를 지키는 건지 조그만 소리로 밭은기침을 할 때마다, 술과 담배에 전 숨냄새가 주변에 흩뿌려지고, 기침이 잦아들고 작게 한숨을 쉬면, 노인의 폐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와서 스멀스멀 번지는 공허한 죽음의 냄새..
남들은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만, 난 이걸 죽음의 냄새라고 부르고 있다.
그걸 맡기 싫어서 코를 잡으려고 차렷자세로 간신히 구겨 넣어져 있던 몸을 뒤척이면, 내 등뒤에 서있는, 고개를 돌려서 볼 수 없기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온몸에 힘을 주며 저항한다.
사실 느껴지는 힘 정도로 봐서는, 확 접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은 정도지만, 나는 출근을 해야 하고 주말에 가족도 만나야 한다. 시비가 붙어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
손을 올려서 코를 쥐는 것을 포기하고 서 있자면, 또 그 근처 나랑 비슷한 작은 키, 뚱뚱한 남자의 대머리, 남은 머리숱 안쪽으로 하얗게 보이는 비듬들. 지하철이 흔들릴 때마다 조금씩 흩뿌려지고, 그걸 피하려고 또 움직여보자면, 누군지 알 수 없는 등뒤의 저항
조용히 포기하고 반쯤 패닉상태에 빠져들 때쯤 또 역에 정차하고 차량엔 새로운 냄새와 새로운 비듬과 새로운 땀이 탑승한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총이나 칼 등을 마구 휘두르며 차량 안의 인간 돼지들을 죽이고 있다 보면, 문득 그걸 깨닫는 거지.
아. 나도 인간이구나, 나도 땀냄새가 나겠지, 아침에 주로 빈속인데, 입냄새도 날 거야. 저들도 나를 똑같이 보겠지.
이 생각이 들면 다음 수순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무인도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다.
아 다들 힘들구나 피곤하구나 이해하자, 토닥여주자, 이건.
내가 그들과 같지 않을 때.
나는 늙지 않고, 나는 냄새나지 않고, 나는 지치지 않았을 때, 그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자비는, 부처나 할 수 있는 거고
사랑은, 예수나 설파할 수 있는 거다.
그들이 나고, 내가 그들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오히려 정말 지긋지긋하고 끔찍해진다.
그런 지옥 속에서 결국 환승역에 다다르면, 거의 자동화된 발걸음으로 환승 승강장으로 걸어가고, 환승 지하철에 탑승할 무렵이면 거의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기분이 든다.
그리고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근무지 역에 도착하면, 까맣게 모여 줄을 서서 계단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하철 역 출구 바로 옆 건물 세 개는 아직 완공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상기하며, 그것들이 완공되면 지금보다 사람이 더 많아지겠지?라는 상상을 하고.
긴 줄을 통과해서 개찰구를 나온 후 또, 긴 계단을 줄줄이 늘어서서 올라오면, 전단지 나눠주는 할머니들이 회사 근처까지 가는 길에 마치 화동이 꽃 뿌리듯 전단지를 뿌리고 때론 반강제로 나눠주며, 무시하고 지나가면 세상에 둘도 없는 호래자식 보듯 보는 시선을 받게 된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서 회사 앞에 도착하면, 즐거운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