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란 무엇인가?
사회는 간단하게 답한다. 나이가 몇 살이 넘으면 성인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기준은 지나치게 조잡하다. 17세에도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고, 40세가 되어도 자신의 삶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둘을 단지 숫자 하나로 구분한다.
법은 편의를 위해 선을 긋는다. 하지만 그 선이 인간의 실제 능력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성인이란 무엇인가?
성인이란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존재'다. 그렇다면 성인의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책임 능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권리와 책임은 늘 함께 이야기되지만, 현실에서는 다르게 작동한다. 모든 사람은 같은 권리를 가지지만, 책임은 일부에게만 집중된다.
정치도 그렇다. 모든 시민이 정치적 권리를 가지지만, 실제로 사회의 방향을 고민하고 정책을 만들고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대부분은 '정치적 보호 상태'로 살아간다.
법적으로는 모두 성인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구조를 바꾸는 편이 더 정직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성인이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통해 선택적으로 얻는 자격'이라면 어떨까.
성인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정책을 만들고, 권력을 행사하고, 사회 운영에 참여한다. 하지만 그 대신 더 큰 책임을 지고, 권력 남용 시 더 강한 처벌을 받는다.
그 자격은 영구적이지 않다. 매년 갱신된다. 탈락하면 다시 '보호 시민'으로 돌아간다. 권리는 줄어들지만, 의무도 줄어든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권력 욕망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필요하다. 권력은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권력 욕망과 책임 회피가 결합될 때 생긴다.
그래서 성인의 기준은 권력을 원하느냐가 아니라, '권력을 사용할 능력과 그 결과를 책임질 의지가 있는가'가 된다.
이 사회에서 대부분은 굳이 성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시험, 책임, 감시, 처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두 상태를 오간다. 어떤 시기에는 성인으로서 사회를 운영하고, 어떤 시기에는 보호 시민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아간다.
성인은 영구적인 신분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역할'이 된다.
그리고 어느 날,
한 사람이 성인 면허를 반납한다.
몇 년 동안 정책을 만들고, 회의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책임을 감당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제 됐다."
면허를 내려놓는 날, 사람들은 말한다.
"수고했다."
그리고 그는 보호 시민으로 돌아간다.
이제 그는 속옷만 입고 거리를 걸어도 된다.
아이처럼 응애 거리면서.
아무 책임도 없이, 아무 정책도 고민하지 않고, 아무 권력도 행사하지 않고.
그저 세상 속을 걸어간다.
성인이란 것이 이처럼 잠시 맡았다가 내려놓을 수 있는 역할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