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언가를 달성하는 것에 있어 그 크기는 내가 결국 얼마나 멀리 내다보고 진행했는지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닐까.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 나는 얼마나 숲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숲보다 더 큰 범주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갓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나는 취업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전공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전문가가 되고 싶었고, 그 마음가짐으로 덜컥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내 전문분야에 대한 떳떳함을 지키고 싶은 것이 숲으로 작용했다. 이렇듯 숲을 보았더니 나무가 딸려왔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잠시 복기해 보았다. 솔직히 나무도 얻을 수 있던 이유는 운이 한몫했다. 그래도 운칠기삼 중 '기'는 알맞은 벡터를 통해 획득가능하지 않았을까 가설을 세워본다.
어릴 적 나는 내신 영어가 싫었다. 학원에선 지문을 달달 외우는 형태로 학생들을 훈련시켰고, 나는 건성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나는 더 본질적인 것을 익히고 싶었다. 영어를 알아듣고 외국인 친구들과 만날 때 능숙하게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영어 성적이라는 나무가 아닌 제2 국어로 체화하고자 한다는 숲을 그리며 공부를 하곤 했다. 그 결과 월등한 실력은 아니지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고 당시 학교나 수능 영어에서도 나쁘진 않은 성적을 거뒀다. 아마 내가 영어 성적을 목표로 달렸더라면 영어 성적이 압도적인 1등급은 나왔을 것이다. (만약 본인의 숲 또는 나무가 대학이라면 성적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맞다.) 그래도 나는 숲, 원하는 것을 달성해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조금씩 눈높이가 자라면서 원하는 것을 크고 본질적으로 보는 방법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느덧 조급해지고 시야가 좁아진다. 어떻게든 성능을 끌어내고 주어진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더 멀리 보고자 하는 마음은 점점 적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읽은 'The one thing'이라는 책에서는 본인의 한 가지 궁극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10년 후, 5년 후, 1년 후 등등을 그릴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나의 the one thing이라니, 굉장히 갖고 싶고 닮고 싶은 말이다. 이럴 수 있다면 나는 항상 숲, 그 이상을 바라보는 사람일 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럴싸한, 나를 이루는 가장 큰 기둥을 정하지 못했다.
가장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내려가는 top-bottom으로 크고 작은 목표들을 세운다면 참 좋겠다. 그러나 일상에선 bottom이 대다수를 이룬다. 영어학원을 가야 해, 오늘까지 이걸 끝내야 해, 수업 과제를 해야 해 등등. 그래서 이제는 bottom에서 top으로 탑을 쌓는 것을 연습해볼까 한다. 당장 코앞에 닥친 현실을 숲으로 승화시키는 거다.
예를 들어서 오늘 내가 무조건 1주일 안에 끝내야 하는 무언가를 회사에서 할당받게 된다면, 이 과제 완성을 통해 회사와 내 동료들에게 주는 이득과, 내가 얻는 스킬 셋, 내 커리어의 작은 일부분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 진행할 것이다.
표면적으로 얻는 목표 말고도 내가 추상적으로 더 획득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나에게 하루 3번씩 물어볼 거다. 이 연습을 통해 나는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며 중요한 모든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되고, 운칠기삼의 기 3할과 운의 방향을 틀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