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복이 소복하게

그리고 내일도

by 글루

이번주에는 드디어 목발을 떼어냈다. 손이 자유로운 채로 - 물론 아직 왼손은 깁스를 하지만 - 느리게 걸어 다니니까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문도 수월하게 열 수 있었고, 카페 음료를 내가 직접 픽업해서 다닐 수도 있게 되었다.



작년쯤 읽은 어느 책에서 아침에 눈을 떠 일어날 때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일어나라고 했었다. 당시 내가 본 구절 중 가장 따라 하기 싫은 행동이었다. 괜히 멋쩍어지는 행위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최근 2달 동안 큰일들을 겪은 그 사이의 어느 날, 창문에서 들어오는 강한 햇빛에 자연히 눈을 뜨면서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감사했다. 내가 살아 숨 쉬고 발가락을 꼬물거리고 있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일까? 인간이 목표를 세우고 성취를 달성하면 큰 도파민을 얻는데 이런 일은 매일마다 여러 번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임계치가 낮은 사람들이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작은 것들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걸까? 분명 그냥 지나친 일상이었는데 의식적으로 중요한 순간이라 되뇌자 정말로 행복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겨울이 지나 아침에 일어나면 해가 떠있는데, 하늘이 '하늘'색일 때 출근하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원래 아침잠이 많기도 하고, 일찍 출근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걸 체감하기에 좋은 날씨다.



집중해서 일이나 작업을 할 때 밀크티를 마시는 걸 좋아한다. 아직도 커피의 쓴맛에서 어떻게 맛을 느끼는지 몰라 주변 사람들 중 거의 나 혼자만 다른 음료들을 마신다. 매일마다 테이크아웃 해서 한잔씩 마시는 내 루틴이 행복하다.



일을 목표 체크포인트만큼 달성하고 잠깐 휴식을 취할 때 흡연하면 행복하다. 나에게 고생했다고 주는 작은 선물이다. 아마 금연은 꽤 오래오래 후에나 시도할 듯하다.



통증이 덜해지면 행복하다. 이러다 발도 손도 다 나으면 매일매일이 건강해서 행복하다고 되뇔 수 있으면 좋겠다. 잃어봐야 소중함을 알아버린 것을, 다시 되찾았다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지나치지 말았으면 한다.



여기까지가 거의 매일 나를 찾아오는, 내가 행복해하는 여러 소소한 일과들이다.


그리고 정말 최근에 느낀 행복 포인트는 일찍 퇴근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다. 적당히 선선한 바람과 적당한 노을을 보며 일을 끝냈음을 스스로 선언하고 퇴근길에 오른다. 원래라면 책만 몇 페이지 들춰보고 자야 할 게 퇴근 후 시간인데, 같은 하루를 직장 외 시간으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게 새삼 행복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 외로도 나를 찾아오는 작은 행복들이 있다. 누군가 문을 열고 기다려줄 때, 후원하는 곳에서 감사 편지가 날아올 때, 길고양이가 나한테 친한 체할 때, 엄마와의 데이트 등.


이런 작은 티끌 같은 행복들은 차곡차곡 쌓여 어느덧 소복하게 나라는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나 보다. 오늘은 주말인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잔잔한 노래를 틀어 독서를 즐기며 하루를 시작했다. 은은한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