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극복한 약물의존
그제가 정신과 예약일이었다. 이른 아침 내과에서 코로나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집에 바로 귀가했다. 정신과에 전화해 사정을 알리고 예약을 취소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안 먹은 정신과 약이 며칠분 있었다. 이전에 까먹고 안 먹은 게 2일분 있었고, 이번 2주간도 3일분이 더 남아있었다.
약 없는 하루들을 어떻게 버틴 걸까. 의아하기보다는 기뻤다. 약을 까먹은 사실을 추리해 낼 만큼 딱히 컨디션 변화를 느낀 날이 없었다. 약을 안 먹고도 그럭저럭 살아냈다는 뜻이다. ADHD 치료를 시작하고 나는 제법 애를 썼다. 살아가는 법을 처음 배워나가는 아이처럼 자는 것, 먹는 것을 비롯해 내 생활의 밑바닥부터 뜯어고치려 노력했다. 약을 까먹고도 큰 변화 못 느끼고 지나간 건 노력의 성과가 습관으로 굳어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콘서타는 내게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누군들 이 약의 효과를 물으면 주책맞은 오타쿠처럼 3시간쯤 떠들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런 한편으론 두려웠다. 내성이 없는 약이라고 해도 왠지 맘이 안 놓였다. 약의 효과가 언젠가 끝날 것 같았다. 아직 내가 많은 걸 바꾸고 습관으로 정착시키지 못한 어떤 타이밍에 예기치 못하게 약이 나를 배신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한참 할 당시에 자전거를 배웠다. 시에서 하는 자전거 교실에 등록해 수업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몇 시간이면 터득한다는 자전거를 나는 성인이 되고도 탈 줄 몰랐다. 한강에서 친구 둘이 붙어서 날 가르쳤지만 실패했다. 그 광경을 보고 지나가는 아저씨도 나를 도와주셨지만 끝내 나를 포기하셨다.
아무튼 간에 자전거를 다시 배우게 되던 그 시기 나는 '만물 ADHD설'을 내심 밀고 있었다. 이 거지 같은 운동신경도 생물학적 문제가 아닐까 의심하며 '약발'로 자전거를 타게 될 수 있으리란 기대와 함께 자전거 교실에 간 것이다. 그러나 열 명 남짓한 수강생 가운데서 나는 열등생을 넘어 고문관 수준이었다. 답답해하는 강사님의 표정과 나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가는 상황을 보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흔히 뒤에서 밀어주다가 몰래 놓는다고 한다. 그날 자전거 교실에서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지도 못했지만, 기가 쫙 빨린 채로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왜인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혼자 배우지 못하면 누군가 뒤에서 밀어줘야 하듯, 나도 내 힘으로 잘 살아내지 못해서 약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아직 핸들을 잡고 페달을 굴리는 데 익숙해지지 못한 타이밍에 등 뒤의 콘서타가 너무 일찍 손을 놔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이어졌다. 내가 아직 '새사람'이 되지 못했을 때 약이 제 기능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비합리적인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아침에 눈 뜨면 약 먹을 생각부터 났다. 약을 먹어야 나란 인간의 전원이 켜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변한 건 콘서타의 효과뿐만 아니라 내 선택과 노력도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례로 약을 먹은 이래로 아침운동을 하게 되었지만 사실 약 먹고도 의지가 없으면 폰 보며 누워있을 수도 있었다. 맑고 개운한 정신으로 유튜브에 집중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치료 초반 약을 과대평가하며 ADHD에 대해서도 상당히 과몰입을 했었는데 깨달음 이후로 관심이 많이 식었다. 일어나면 기계적으로 약을 먹고 그 후엔 내 진단명에 대해 잊고 살았다.
그리하여 0순위이던 약 복용을 까먹기까지 하는 오늘날에 이르렀다. 사실 약 까먹는 게 결코 좋은 건 아니다. 내가 먹는 약이 콘서타만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에스시탈로프람 같은 항우울제는 꾸준히 먹는 게 정말 중요하다 들었다. 하지만 약 까먹는 거보다도 약에 너무 의존하는 게 더 나쁜 것 같다. 그러니 남은 줄도 몰랐던 약봉지를 발견했을 때의 왠지 모를 기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