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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마 Nov 29. 2023

검열 없는 일기

페르소나에 집어삼켜진 자의 딜레마

보여지는 일기를 한동안 적었다. 공개글을 쓰는 일은 피곤했다. 겨우 일기일 뿐인데 필요 이상의 공을 들였다. 좋은 문장을 적기 위해서가 아니라, 틀린 문장을 적지 않기 위해서. 내 감정과 생각을 나도 모르게 왜곡해 적을까 봐. 내가 서술한 내 경험에 과장된 부분이 있을까 봐. 그뿐만 아니라 누가 내 글을 보면 부끄럽고 두려웠다. 혹여 댓글 알림이라도 뜨면 가슴이 콩콩 뛰고 그 알림을 확인하는 것이 내게 큰 숙제가 되었다. 그 타협안으로 댓글창을 닫고 하트만 누를 수 있게 해 놨다. 그런데 누가 내 글을 보지 않는 것도 외로웠다. 네이버 블로그를 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방문자수와 조회수를 살폈다. 우습게도 댓글은 무서웠지만 숫자를 보는 건 괜찮았다. 내 일기를 찾아온 사람들 가운데 한 명쯤은 내게 공감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은밀히 위로받았다. 그래서 숫자는 가능성이었다. 난 거기까지만 괜찮은 사람이었다.


블로그를 비공개로 돌렸다. 내 일기인데도 솔직하게 적을 수가 없어서였다. 나만 볼 수 있어야 검열 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비공개로 돌리고 나서, 나는 더 이상 일기를 적지 않았다. 쓸 맘도 생기지 않았다. 일기란 수단이 있다는 것, 블로그란 적을 곳이 있다는 것, 내가 일기를 쓰던 사람이라는 것, 그 모든 게 희미해져 갔다. 일기 대신 메모나 자료 저장을 위해서만 가끔 들어갔다. 블로그는 점차 책상 옆 서랍 맨 윗 칸 같은 존재가 됐다. 온갖 잡동사니를 질서 없이 쑤셔 박아둔 좁아터진 창고 같은 공간이 됐다.


어제 친구가 말했다. 그 애는 아무 가면도 쓰지 않은 진짜 자기 모습을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게 무섭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그 애가 조금 멀게 느껴졌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바람은 가져본 적이 없다. 가면을 쓰지 않은 모습으로 왜 사랑받고 싶은지, 왜 그러야만 하는지를 나는 내심 이해하지 못했다. 가면을 쓰지 않은 내 모습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어떤 가면을 쓰지 않고도 오롯이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갖는다는 것이다. 나는 자신이 없다.


이따금 특이한 실수를 하고 쩔쩔매며 사과한다. 최근 일 중에 생각나는 건, 친구가 내게 무언가를 제안하며 괜찮겠느냐고 걱정했다. 그 일을 처리할 정신적 역량이 내게 존재하는지를 묻는 거였다. 나는 할 수 있노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힘에 부쳤다. 그걸 스스로 인정하고, 할 말을 정리하고, 실제로 내뱉기까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됐다. 그땐 내가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그것과는 별개로 근거에 기반해 판단했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나를 속이고 너 또한 속였다고 했다. 그 애는 사려 깊게 되려 나를 다독였으나 부끄럽고 미안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드는 감정을 뭐라 표현할지조차 모르겠다. 내가 뭘 느끼고, 생각하고, 원하고, 할 수 있는지를 내가 모르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수치심의 차원을 뛰어넘는 것 같다. 


보여지는 일기를 적을 때에, 원래 이 정도 길이를 쓰고 나면 어떻게든 마무리를 하곤 했다. 억지로 좋은 방향으로 끝을 맺었다. 언젠가 정신과 진료실에서 일기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이 얘기도 했다. 그때 선생님 표정을 보고서 이게 그리 좋은 습관이 아니구나 어렴풋이 짐작했다. 솔직한 게 아무렴 좋겠지. 근데 난 왜 그게 안 될까. 지금 이 글은 최선을 다해 솔직하고자 나름대로 애를 쓴 결과물이다. 


나는 켜켜이 쌓인 가면들을 벗어던지고 진짜 나만 남았을 때 그게 과연 좋은 모습일지를 모르겠다. 어떤 모습일지가 우선 두렵다. 그리고 그다음으론, 어쩌면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냥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불안정한 내 모습이 불편하다. 얼마 전 상담센터에서 하는 집단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원하는 자기 모습을 도화지에 그려보라고 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기둥과 뿌리가 과장되게 크고 두꺼운 나무 한 그루를 그렸다.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안정된 특질을 여럿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나는 검열을 덜어낸 일기를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보여지지 않는 일기도 이따금 길게 적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023.12.29 AM 08:05


한 달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 어쩌면 그 변화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 같다. 댓글과 같은 피드백을 확인하는 것이 전처럼 버겁고 두렵지 않다. 처음 브런치에 댓글이 달렸을 땐 역시나 심장이 요동쳤지만 점차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편안해지고 있다. 지금은 오히려 댓글 알림이 설레고 재밌다.


그래서 이 글을 지울까 고민했다. 그러나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이런 어려움을 안고 이런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꼭 나뿐이진 않을 것 같아서. 이 또한 과거의 내가 남긴 솔직한 기록이니까. 완벽하지 않은 나에 대해서도 연민과 애정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이 변화가 달갑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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