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구질구질한, 이제는 거슬리지 않는
# 23년 5월
버스정류장 벤치 아래 노란 꽃을 봤다. 버렸나, 밟혔나, 했다가 다시 보니 그저 누워서 자란 것뿐이었다. 그제야 '아, 햇빛 보겠다고, 살겠다고 누워서라도 자라서 여태껏 살아있구나', 싶었다. 그래 그 순간. 그 순간에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느낌의 소용돌이에 빠져 금세 그 꽃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나는 차마 이렇게는 끈질기지 못한 나와, 그럼에도 아등바등 어찌어찌 살아는 있는 나와, 어쩌면 이보다 더 삶에 미련을 둔 나를 동시에 떠올렸다. 그 순간의 나는 그 느낌을 싫어했다. 나 같기도, 내 편 같기도, 내 꿈같기도 하면서, 또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너무 닮아버린 그 꽃이 주는 그 모든 느낌들이 혼란하고 끔찍했다. 누군가는 이 꽃의 생명력에 감동할까? 감탄할까? 하는 생각이 들자 더 싫었다. 그 무렵 나는 그저 남들처럼 되고 싶었기에, 남들이 느낄 만한 감상을 따라 해보려고 경외심을 쥐어짜 내보기도 했으나, 차마 정말 그렇게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귀신같은 직감이었다. 뭐가 될진 모르겠으나 기억하고 곱씹을 의미가 될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 구질구질하고 여간 거슬리는 노란 꽃을 성의 없이 찍은 이 사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간직한다.
# 25년 6월
2년이 흘렀다. 그 꽃은, 이 사진은 여전히 내게 숙제 같은 존재였다. 그 꽃이 싫은 만큼 그 꽃을 싫어하는 나도 싫었기에, 이제는 뭔가 다른 따뜻한 시선으로 이 사진을 바라볼 수 있는 나를 기대했다. 2년의 시간은 꼭 그만큼의 기대는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그게 실현되기까지는 충분치 않은 시간이었다.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도 한참 멈춰 있었다. 이제 나는 이 사진을 거슬려하진 않을 수 있게 됐지만, 그 이상의 부드러운 마음은 여전히 없었다. 그래서 그 글은 본문이 없는 채로 저장만 해뒀다. 작가의서랍에는 오직 이 글만 있었다. 숙제 같은 글을 언제 써서 마무리할 수 있을까, 언제 나는 이 꽃을 사랑하게 될까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어쩌다 서랍에 들어가 제목만 써진 이 글을 볼 때면, 아직은 때가 아니구나, 나중으로 미뤄야지, 어찌 됐건 '그 때'는 나중이겠거니, 하고 얼른 넘겼다.
# 25년 9월의 끝자락
다시 사진을 본다. 어쩌다 또 서랍에 들어갔단 얘기다. 언제 쓸 수 있을지, 그 때가 오긴 할지 요원하다. 그래서 그냥 지금 쓴다. 얕게는 그저 서랍을 비우고 싶은 욕망이고, 더 깊이는 그냥 이대로도 괜찮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이 꽃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직'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냥 전에도 지금도 사랑하지 않는다. '앞으로'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살겠다고 존심 다 버리고 누워서라도 자라난 그 꽃을 그다지도 거슬려하던 그때의 나를 용서한다. 나는 그 꽃을, 이 사진을 사랑하기를 포기하는 대신 사랑할 수 없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아, 거창하게 사랑까진 아니어도, 거슬려하진 않기로 했다.
경이로운 생명력 같은 것, 감동 같은 것, 굳이 있어야 하나 싶다. 그래봤자 연약한 생명 하나, 경이로워지기까지의 삶의 질곡이 굳이 있어야 하냔 말이다. 그냥 기름진 흙 위에 태평히 자리 잡아 고개 빳빳이 들고 햇볕 듬뿍 받았으면 좀 좋았을까. 그래서 이젠 이 사진에 감동을 느끼고 싶지 않다. 원래부터 그랬던 나를 이제 받아들인다. 나는 누워서 자라는 꽃에 대한 대견함보다는, 누워서 자라지 않을 수도 있었던 그 꽃의 다른 가능성을 애도하고 싶다. 또, 결코 누워서 자라고 싶지는 않았을, 차마 그리 살 줄은 몰랐을 그 꽃의 설움을 다만 인정하고 싶다.
아주 가끔, 정말 아주 아주 가끔은, 축약하자면 '불행'이 되고 마는 과거의 그 모든 일들이, 지금에서야 내 무기가 되기도 했다고 느낀다. 예를 들면, 나는 삶의 아이러니에 어느 정도는 면역이 되어 있다. 타인의 상처에 공명할 줄 안다. 사랑과 질서가 무너진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세상이 그걸 다시 되찾을 수 있게 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불행들이 일어나도 괜찮은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지금의 모든 걸 다 버리고서라도, 선택권만 있다면 나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택할 것이다.
그래서 연민. 이제야 연민을 느낀다. 누워 자라고 싶지 않았으나, 그런 삶이 존재할 줄도 몰랐으나, 하필이면 스스로 그렇게 살아야 했던 그 꽃이 이제는 가엾다. 선택할 수 없고 선택하지 않은 것에 휘둘리고 상처받고, 그래도 용케 살아남아 샛노란 꽃잎 키우고 피워낸 그 모든 안간힘과 설움을 가만가만 상상해 보며 다독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