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는 골프를 잘 치지만, 더이상 치지 않는다.
내가 아내가 남자들과 골프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직업적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다른 남자들과 함께 차를 타고 예쁜 옷에 몸매를 드러내고 그 몸매를 다른 남성들이 합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싫다. 심지어는 골프가 끝나고 식사까지 하니 골프를 친 사람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상한 상상이 끝없이 이어진다.
내 아내는 부서 회식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다. 있다해도 아이를 데리고 간다.
내가 아내가 회식 참석하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술자리를 겸한 회식이라면 참석자들의 판단력이 점차 흐려지는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 많아진다. 그리고 내 아내가 늦게까지 같이 술 마시는 여자로 인식되고, 난 그런 여자와 사는 남자라는 시선도 두렵다.
내 아내는 본인의 업무가 재밌지만, 내 앞에서는 잘 표현도 못한다.
내가 아내가 직업에 열정을 가지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난 내 아내가 가정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나머지는 소홀하길 기대한다. 그래서 적당히 일하고 우리 가정에 더 많은 애정을 쏟길 바란다. 한편으론 나보다 먼저 진급을 했을 때 주변에서 바라볼 동정심과 한심스러운 눈빛이 걱정되어 아내의 열정을 경계하는 것일 수 도 있다.
내 소망에는 공통점이 있다.
저마다 나름대로 그럴듯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본질은 부부간의 신뢰이고,
신뢰의 정도를 얘기하는 수준에서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부부 사이에서 일방의 희망사항이 다른 일방의 삶을 어디까지 구속할 수 있는가?”이다.
그에 대한 해답은 아마도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일방의 희망사항이 지켜지지 않아 더 이상 가정을 유지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면 그 시점부터 구속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아내가 남편의 희망사항을 지켜주려다가 더 이상 가정을 유지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된다면 남편의 희망사항에 의한 구속은 더 이상 진행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보편타당한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서 남편으로서 아내에 대해 구속할 수 있는 범위가 있지 않을까? 대다수가 공감한다는 것은 “법으로 적용할 필요도 없는 수준의 일반상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연장선에서 생각해보면 남편이 아내를 구속할 수 있는 정도는 법으로서 명시된 범법행위를 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수준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다 큰 성인의 ‘범법행위가 아닌 행동’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사회가 정한 부부의 의무를 넘어서는 것이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건 아내에게 골프를 가지 말라, 직장을 소홀히 하라, 회식하지 마라 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내 자식에게조차도 그렇게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아내를 구속하려 든다는 것은 스토커 수준이다.
내 안의 이 문제는 내가 결정할 문제도 아내가 눈치 볼 문제도 아니었다. 애초부터 일방이 가/부 여부를 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내가 부부의 의무를 확대 해석하여 초래된 것이다. 이제 아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하면 맞을까? 아내는 당연히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고 해야 하고 나는 아내를 지지해주어야 한다. 겉보기에 그럴듯한 부부보다 마음속 깊숙이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그런 부부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아내를 구속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