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최고의 빨래 시스템
굳이 P와 J로 나누자면 나는 P에 너무나도 가까운 성향이라 (매번 80% 이상이 나온다) 출국 당일까지도 비행기, 일정 중 절반의 숙소, 발리 공항 도착 후 숙소까지의 택시까지만 예약을 했었다. 여행 동행자도 도착해서 생각해 보자는 스타일이라 이때까진 문제가 될 건 없었다. J 성향을 흉내내기 위해 미리 찾아본 곳이 있긴 있다. 두 세 곳 정도의 맛집이었는데, 하루 만에 두 곳을 가고 나니 또 찾아야 하는 약간의 번거로움 정도가 있었다. 발리 도착 후, 하루가 지나자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발리는 건기와 우기가 명확히 나뉘는데, 5월부터 9월까지는 건기, 10월부터 4월까지가 우기이고, 내가 여행한 1월은 우기에 속했다. 우기라고는 하지만 짧게 내렸다가 그친다고 하는 여러 개의 후기를 보고 우산이나 우비를 챙기지 않았는데, 비 대신 다른 게 옷을 적셨다. 발리는 해가 진 후에도 평균 기온 26도를 유지했다. 그렇다면 해가 떠있는 낮에는? 체감 온도가 30도를 넘었고, 숙소에서 나와 바이크를 타는 몇 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도 땀이 흘렀다. 유독 몸에 열이 많은 나는 등을 적시는 뜨끈한 것에 혀를 내둘렀다. “벌써?” 샤워를 하고 나온 것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빠르게 몸을 데웠다. 대단하다, 발리..
오전에 잠깐 나갔다 들어와도 젖어버리는 옷 탓에 반나절만에 빨랫감이 생겼다. 수영복이야 손빨래로 해결한다지만, 일상복은 그럴 수 없었다. 심지어 옷을 많이 챙겨 왔다고 생각했는데, 날씨가 워낙 더워서 통이 크거나 길이가 긴 옷은 손길조차 가지 않아서 입던 옷만 입으려니 막막했다. 고민하던 중, 여행에 도움이 많이 된 발리 여행카페를 둘러봤다. 딱히 빨래에 대한 얘기가 없어서 검색창에 ‘발리 빨래’를 검색해 보려다가, 숙소 체크인을 할 때 받았던 안내문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다양한 서비스 중에, 찾았다. ‘런드리’!!
런드리 단어를 발견하자마자 숙소 왓츠앱에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우붓에서 지냈던 숙소의 장점 중 하나는 왓츠앱으로 바로바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1분이 조금 지났을까 바로 답장이 왔다. 1kg에 10,000 루피아며, 오전에 맡기면 다음날 오전, 오후에 맡기면 다음날 오후에 받을 수 있다고 했다. 10,000루피아라고 했을 때 쉽게 계산하려면 0을 하나 빼면 된다. 물론 정확한 금액은 아니다. 1kg에 약 천 원 정도. 문의하던 시간대가 점심이라 오후에 맡기겠다고 했고, 다음날 세탁물을 가져오면 계산하는 시스템이었다.
욕실에 있던 런드리 가방에 세탁물을 담아 입구에 빼놓은 후, 왓츠앱으로 해당 사진과 함께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이때는 런드리 서비스가 처음이라 ‘다른 세탁물이랑 섞이면 어쩌지?’ ‘하나라도 없어지면 어쩌지?’ ‘옷감이 상해서 오면 어쩌지?’ 자잘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역시 걱정은 미리 하는 게 아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세탁물이 섞이지도 않고, 없어진 것도 없이, 심지어 새 옷처럼 예쁘게 다림질까지 해서 비닐에 단독으로 포장(?)해서 보내준다. 우리의 세탁물은 2kg가 나와서 20,000루피아. 대충 2천원 정도 나왔다고 보면 된다. 물론 모든 곳이 이 가격은 아니다. 아마 숙소를 통해 이용한 곳이라 저렴하고 픽업도 해준 거라 예상했다.
우붓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런드리 서비스를 받고 난 후, 스미냑에 있는 두 번째 숙소에 가서 체크인을 하며 런드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고 했더니, 우붓 숙소와는 다른 금액으로 안내했다. 최소 3배. 심지어 키로당 세 배였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빠르게 구글맵을 열었다. 스미냑으로 이동하면서 곳곳에 런드리가 있는 걸 확인했고, 숙소보다 저렴한 금액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런드리부터 확인했지만 가격이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직접 발품을 팔아야 했다. 생각보다 주변에 런드리가 많아서 선택지도 다양했고, 그중 제일 깨끗하고 최신식 기계를 쓰는 곳에 갔더니, 우붓 숙소보단 비싸지만 스미냑 숙소보다는 저렴한 금액에 세탁물을 맡길 수 있었다.
런드리에 도착하면 티셔츠, 팬츠, 아우터 등등 종류별로 나와있지만 한 번도 체크한 적이 없었다. 보통 무게로 측정하는 것 같았다. 또, 하루 만에 끝나는 익스프레스가 있고 3일 정도 걸리는 것도 있는데 금액에 큰 차이가 없으니 익스프레스를 이용하는 게 훨씬 낫다. 물론 장기여행이고, 세탁물이 바로바로 필요한 것도 아니라면 여유 있게 받아도 되지만.
사실 발리 여행을 기다리면서 이런 경험까지 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우리나라처럼 코인 세탁방이 있겠거니, 혹은 여건이 안 되면 마트에서 빨래 세제를 사서 직접 빨래할 생각이 있었다. 만약 여행 기간이 일주일 정도 됐으면 그랬을 수도 있는데, 그것보다 오래 여행하다 보니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바이크도 그렇고, 런드리도 그렇고 발리라는 나라에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