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를 다닐 때쯤인 것 같다. 친언니와 산속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집이 불타기 시작했다. 놀란 언니와 나는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산속이어서 불이 쉽게 옮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하지만 빠르게 달리면 달릴수록 불은 더 가까워졌고, 이러다간 우리 몸에 불이 닿을 것 같다고 느낀 순간 잠에서 깼다. 아마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 뒤로 나는 매일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의 종류는 다양했다. 처음 인식했을 때 꿨던 꿈처럼 불을 피해 도망 다니기도 했고,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엄청난 크기의 괴물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그 당시에 좋아하던 연예인과 대화를 하기도 했다. 신기한 건, 한 번 꿨던 꿈을 여러 번 반복해서 꾼 적이 많다는 것이다. 스타트를 끊어서 그런지 언니와 산속에서 불을 피해 도망 다니는 꿈은 최소 열 번은 꿨고, 63 빌딩보다 높고 빽빽한 건물들이 굉음을 내며 무너지는 꿈도 여러 번 꿨다.
같은 꿈을 여러 번 꾸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누구는 몸이 피곤해서 그렇다고 했고, 누구는 평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가 유독 심한 날에 꿈을 꾸는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둘 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몸이 피곤하든 피곤하지 않든 꿈을 매일같이 꿨고, 스트레스 자체를 받는 성격이 아니기도 했다. 아무래도 정확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꿈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건.
나는 확실히 꿈꾸는 걸 즐기고 있었다. 자면서 스펙타클한 경험을 겪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면서 우쭐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을 자주 꾸는 게 위험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히 언니에게 어떤 말을 했는데, 언니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고 했다. 또 분명히 어느 장소에 갔는데, 실제로는 갈 수가 없던 상황이었을 때.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착각했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기억력이 안 좋은 편이라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어가길 몇 번. 꿈의 내용이 점점 현실적으로 바뀌면서 나중에는 두려워졌다. 내가 혹시 '데자뷰' 라는 걸 느끼는 건 아닐까 하고 찾아봤지만, '데자뷰'란 처음 해보는 일이나 처음 보는 대상, 장소 따위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현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니 같은 현상은 아니었다.
물론 일상에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다. 어쩌다가 한 두 번씩 헷갈릴 뿐, 나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다. 아마 피해를 줄 정도로 심각했다면 이미 몇 년 전에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을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맨 처음으로 시도한 건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었다. 심각성을 알았던 게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라서 몸을 고생시키는 건 아주 쉬웠다. 아침 일찍 등교해서 저녁까지 야자수업을 하다가 집에 바로 들아가지 않고 친구들과 놀다가 들어간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음날 등교를 위해 잠에 든다. 매번 성공한 건 아니지만, 전보다는 비교적 꿈꾸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몸을 고생시킬 수 없는 날에는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어차피 꾸는 꿈, 내가 원하는 꿈을 꿔보자. 이 방법은 요즘에도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는 방법인데, 자기 전에 꿈에 나오길 원하는 물건이나 가고 싶은 곳, 혹은 꿈에 나타났으면 하는 특정 단어를 계속 떠올리다가 잠드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좋아하는 가수들을 떠올렸었는데, 요즘엔 조상님을 떠올린다. 복권 일등에 당첨되는 사람들이 조상님 꿈을 꾸고 당첨됐다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신기하게 다른 건 다 꿈에 나오는데 유독 조상님만 꿈에 안 나온다. 기회는 아무에게나 쉽게 오지 않는다는 뜻인가?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을 '꿈'이 나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다양한 시도 끝에 나만의 방법을 찾아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나만의 방법을 찾고,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결코 불가능한 건 아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 문장처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