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기억과 역사
‘신작’은 주로 새로 만들어진 예술 작품 앞에 붙여 쓴다. 신작은 다른 곳에도 쓰인다. 일제강점기에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게 길을 만들어 ‘신작로’라 불렀다.
우리 마을에도 구불구불한 비포장 신작로가 있었다. 지금은 곡선 구간을 최대한 줄여 아스팔트 도로로 포장되어 있다. 봄이면 길 양옆으로 30년도 넘은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꽃망울을 화려하게 터뜨린다. 옛날 우리 동네 신작로는 이웃 면 소재지로 이어지는 길이었지만, 굳이 그 길을 이용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대체 도로가 있었다. 그래서 비포장에다 구불구불한 신작로를 넘어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덕분에 그 길은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풀 뜯는 소와 소년들의 길이었다.
동네 앞 신작로 입구에 소를 풀어놓으면 소들은 그 길 가장자리를 따라 풀을 뜯으며 고갯마루까지 올라갔다. 해 질 무렵이 되면 소와 소년들은 어느새 고갯마루에 닿아 있었고, 어둑해지기 전에 소를 몰아 서둘러 집으로 내려왔다. 그곳에서는 소를 잃어버릴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길 양옆으로 논과 밭이 길게 이어져 있어 소가 벼나 고구마·옥수수·콩밭 등에 들어가 작물을 뜯어먹거나 망가트릴 수 있었다. 그래서 늘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고갯마루에는 논밭은 없었지만, 자신의 산에 보물이라도 숨겨 놓았는지 하루도 빠짐없이 산에 올라 산을 지키는 염 씨 아저씨가 있어 그곳 역시 마음 놓고 소를 풀어놓을 수는 없었다. 소가 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염 씨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 고함을 지르며 우리와 소를 몰아내곤 했다. 고개 너머까지 소를 몰고 갈 일은 없었다. 굳이 고개를 넘지 않아도 소를 배불리 먹일 만큼 길은 충분히 길었고, 하루 해는 짧았다. 그래서 고개 너머 마을은 특별히 가 볼 일이 없었으며, 내게 늘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난생처음 그 신작로 위를 달리는 군용 트럭을 보았다. 트럭 양옆으로는 군인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 군인을 볼 일이 없었던 나는 그 행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트럭의 묵직한 엔진 소리와 착착 소리를 내며 땅과 부딪치는 군화 소리에는 진중함이 묻어 있었다. 평소 누런 소와 지게를 지고 오르내리는 농부 외에는 볼 일이 없던 신작로가 그날은 진녹색 군복을 입은 군인과 트럭들로 가득 찼다. 대열 속 몇몇 군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 걸까? 어디 전쟁이라도 일어난 건가?’
전쟁 영화에서나 보던 군인들의 행군을 직접 보니 신기했다. 그 행렬은 산마루 염 씨 아저씨 산을 지나서야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길의 끝은 멀리 광주까지 연결되는 길이라 가끔 80년 5월과 연관 지어 보지만, 약간은 무리한 상상인 것 같다.
역사는 길과 함께 이루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용감한 장군이 그 길 고갯마루에서 외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여순사건 때는 그 길 위에 국군이 트럭을 대기시켜 놓고 마을 청년들을 실어 갔다. 그 길 위에서 이별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 길을 따라 반가운 얼굴이 고향을 찾기도 한다. 그 길은 앞으로도 크고 작은 사건과 누군가의 삶 속 무대로 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