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계절

by Anton Choi

모내기 날은 새벽부터 분주하다. 모내기는 일 년 농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하루를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라 논에는 늘 물이 부족하다. 농부들은 서로 더 많은 물을 확보하려고 경쟁한다. 그래서 자기 논보다 훨씬 위쪽 내에 보를 막고 비닐 호스를 연결하여 물을 끌어온다. 그러다 보면 서로 신경이 예민해지기 마련이고, 좋던 이웃 사이가 말다툼으로 서먹해지기도 한다.


아버지는 겨우내 추위를 이겨 내느라 두꺼운 털옷을 아직 벗지 못한 누런 어미소를 끌고 나와 논을 갈며 물을 채운다. 힘겹게 모은 농수가 한 방울이라도 논두렁 틈새로 새 나가지 않도록 진흙을 반죽해 바른다. 마치 가마솥과 떡시루 사이로 김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밀가루를 바르는 것처럼.

[오른쪽 아래 땅강아지(mole cricket) 네마리]

어미소는 겨우내 마구간에 묶여 지낸 탓에 움직임이 둔하다. 그 순한 얼굴에 싫은 기색을 미처 담아내지 못하고 촉촉이 젖은 커다란 눈을 그저 말없이 깜박일 뿐이다. 녀석은 질퍽한 논바닥을 매 걸음마다 힘겹게 내딛는다.


모내기 날을 잡아 놓고도 논에 물이 충분치 않으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은 타들어 갈 수밖에 없다. 늘 물이 부족했던 것만은 아니다. 어떤 해는 봄비가 충분히 내려 부모님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뚫어 주기도 했다. 그런 해에는 논에 가득 차 찰랑이는 물처럼 누렁소와 아버지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다. 논두렁 속에 살고 있던 땅강아지들은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여기저기 붙잡을 것을 찾아 급하게 헤엄치느라 분주하다.


품앗이

못자리에는 어린 모가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연초록 모 잎 끝에는 투명한 무지갯빛 이슬이 알알이 맺혀 있다. 이 모들을 한 움큼씩 뽑아 지난해 가을, 낱알을 털어낸 볏짚으로 묶어 다발을 만든다. 이 작업은 모내기 하루 전에 끝내 두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모내기 당일, 품앗이 온 동네 이웃들이 새벽부터 못자리에서 불편한 오리걸음 자세로 모를 쪄야 하고, 모내기 시간은 그만큼 길어질 수밖에 없다. 어린 모들이 뽑혀 나간 자리에는 어디에 숨어 있다 나왔는지 소금쟁이와 물방개가 숨을 곳을 잃고 사방으로 헤엄쳐 도망 다니기 바쁘다.


다발로 묶인 모들은 다랭이논 곳곳에 고르게 던져진다. 대부분은 아버지가 지게로 날랐지만, 어린 나도 양손에 모다발을 하나씩 들고 진흙이 묻은 논두렁 위를 곡예하듯 종종걸음으로 걸으며 아버지를 도왔다. 그리고 던질 자리를 가늠한 뒤, 모 뿌리에 무게중심을 두고 원심력을 이용해 목표 지점으로 던진다. 모다발이 공중에 올라 물로 가득 찬 논바닥에 떨어질 때면 떡메로 떡을 내리칠 때처럼 찰지면서도 경쾌한 낙하 소리가 논 주변에 울려 퍼진다. 생각한 자리에 모다발이 제대로 떨어지면 나도 조금이나마 손을 보탰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모를 나르는 논두렁은 매우 미끄러워 조심하지 않으면 미끄러진다]

모다발이 물이 가득 찬 논으로 옮겨지면 모내기 준비는 끝난 거다. 논의 양끝에 모줄 작대기가 꽂히고 모줄이 팽팽히 당겨진다. 모줄 앞으로 품앗이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가로로 줄지어 서면 모내기가 시작된다. 나는 논두렁에 앉아 모내기를 감독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줄이 삐뚤어지지는 않았나, 심었던 모가 다시 뜨지는 않았나 꼼꼼히 살핀다. 그러고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동네 아주머니는 한마디 건네신다.


“아따, 그렇게 앉아서 감독하니까 면장 같네. 최면장! 최면장 어울리네잉. 동훈이 니는 커서 면장 해도 되것다야!”


듣고 있던 다른 이웃이 말한다.


“이이고, 면장이 뭐다요. 못해도 군수 정도는 해야제, 그래야 밥 벌어먹고 안 살것소!”


나는 부끄러워 한마디 대답도 못 하고, 못 들은 채 동녘 하늘 먼 산만 바라본다.


새참

아침 해가 따갑게 느껴지고,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눈부셔질 무렵, 어머니는 하얀 수건으로 똬리를 만들어 빨간색 고무대야와 머리 사이에 끼워 받치고 다랭이논 아래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오신다. 대야 안에는 꼬들꼬들 잘 익은 찰밥과 묵은지, 돼지고기 볶음, 참기름 듬뿍 넣어 버무린 시금치무침, 식초로 맛을 부린 가오리회무침,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비릿하고 담백한 갈치조림, 그리고 막걸리가 담겨 있다. 대야 안은 새어 나온 김칫국물, 조림 국물, 막걸리 냄새가 찰밥의 온기와 섞여 묵직한 냄새를 풍긴다.


논두렁에 대야를 올려놓은 어머니는 모심기에 열중인 이웃들을 향해 외친다.


“좀 쉬었다 허씨요 잉! 얼른 오씨요.”

“밥 다 식어요, 얼른 오랑께요.”


이웃들은 논가 울퉁불퉁한 길 복판에 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새참을 먹는다. 나도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밥 한 공기를 받쳐 들고 두툼한 갈치 한 토막을 배당받아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늘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 집 단골 품앗이꾼인 뒷집 순영이 어머니는 식사 중 덕담 한마디를 건넨다.


“올해 최센 집 모가 겁나 좋네요. 최 센이 조석으로 올라 댕기면서 물도 잘 대고, 신경 쓴께 모가 안 좋을 수가 없소. 올해는 가뭄만 안 오면 벼가 영 좋겠구만요. 최 센이 벼농사는 솜씨가 있당께요.”


“동훈아, 많이 먹었냐? 이리 와서 더 먹어라 잉! 많이 먹고 느그 큰 아버지 맹크롬 씨름 장사가 돼야제!”

[모내기의 절정 새참 시간]


늘 긍정적인 말로 나를 응원하셨던 뒷집 순영이 어머니는 지금 아흔이 넘는 나이에도 누구보다 건강하게 장수하고 계신다.


요즘도 고향집에서 마주칠 때면 나를 보고 존댓말로 한마디 건네신다.


“아이고, 최센 오셨소! 이렇게 엄니를 자주 들다 본께 안 좋소! 잘 허니까 보기 좋소”


빈집 투성이인 시골집 귀한 이웃인 순영이 어머니가 내 어머니와 이웃하며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어머니와 다랭이논

정오가 조금 지나면 조각조각 층층이 자리 잡은 다랭이논은 모두 초록색으로 바뀐다. 모내기가 끝나고 품앗이꾼이 떠난 논에는 다시 적막이 흐르고, 물방개와 소금쟁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못자리를 나온 연약한 모들은 이제부터 병해충과 싸워야 하고, 논바닥을 쩍쩍 갈라놓을 가뭄도 견뎌 내야 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낱알이 알알이 익어 갈 무렵, 어김없이 그 가느다란 줄기를 꺾어 버릴 수도 있는 늦여름 태풍도 견뎌 내야 한다.


벼는 스스로를 잘 보호하지 못한다.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름 내내 수없이 그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벼를 돌본다. 아버지는 막걸리 한 사발로 고된 육체를 달랬을 것이며, 어머니는 당신 손으로 직접 기른 쌀을 자식들에게 먹인다는 자부심으로 그 힘든 계절을 견뎌 내셨을 것이다.

[지금은 밭으로 바뀐 다랭이논]

내 어머니의 그 여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나이 오십에 가파른 천수답 길을 함께 오르던 남편을 잃고 혼자 오르는 그 길은 몇 배로 더 힘들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그 땅에 작물을 심지 않고 놀린다는 것은 평생을 함께해 온 삶과의 이별을 의미한다. 그래서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팔순 노모는 아직도 그 길에 오르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