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 야외극장
더위를 느끼는 정도는 몸의 크기에 비례하는 걸까? 어린 날의 여름밤은 견딜 만했다. 습한 더위도 있었지만 풀벌레, 개구리 우는 소리도 있었고, 끝없이 깊게 펼쳐진 밤하늘과 그곳에 촘촘히 박힌 별들이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이웃들은 하나 둘 자기 집 마당을 놔두고 돌담 밖 길가로 나왔다. 마대 자루나 비료 포대 하나씩을 들고 바람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모이는 사람은 늘 같은 사람, 우리 엄마, 옆집 들몰댁, 뒷집 순영이 엄마, 아랫집 외숙모등이었다. 포대는 어린 내가 눕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이웃들은 집 앞에 나올 때면 옥수수나 감자등 간식을 들고 나와 서로 나누어 먹었다. 나누는 것은 먹거리만이 아니었다. 고구마 줄기, 도라지, 토란대등 껍질을 벗겨야 하는 일거리를 가져와 함께 했다.
누나들은 나처럼 어른들 곁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지 않고 끼리끼리 동네를 몰려다니거나 개울가로 멱을 감으러 갔다.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에 멱만 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낮 동안 달궈진 땅바닥의 온기를 느끼며 바닥에 누어 넋을 놓고 밤하늘을 바라본다. 밝고 선명하게 빛나는 별들을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별은 더욱 선명해지고 어느 순간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와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우주에 빨려 들어갈까 봐 두렵기도 했다.
별과 별 너머의 세상을 상상했다. 우주의 끝, 우리 우주의 천장은 쉽게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천장 밖 우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그래서 천장 밖으로 나가면 또 다른 우주와 그 우주의 천장이 있었다. 이 구조가 무한 대로 반복되는 것이 내 상상 속 우주였다.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끝이 있기는 한 걸까?”
내가 살아가는 주변의 모든 것은 끝이 있기에, 상상 속에서 우주의 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끝이 없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여행이었다.
여름밤에는 성가신 모기도 많았다. 모기를 쫓기 위해 외양간에 쌓아둔 마른 보릿대를 가져다 불을 붙이고, 소의 먹이로 베어 둔 꼴을 적당히 덮어 메케한 연기를 만들었다. 꼴에 쑥이라도 섞여 있으면 그 연기 향은 참을 만했다. 하얀 연기는 골목을 휘감아 돌다 검푸른 하늘로 올라갔다. 그 깊고 광활한 하늘 아래 누운 나는 이웃 어른들의 도란도란 오가는 대화를 머릿속 스크린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들어 비추었다.
"서울 사는 윗동네 영심이 신랑이 바람이 나서 딴살림을 차려 불었다네"
"아따! 그 썩을 놈이 안 그래 보이드만 사람 속은 모를 일이 랑께"
"영심이 가만 불쌍하게 되부렀네요 잉, 아그들이 아직도 어릴 건데"
"엊그제 밤에 박센 집 소가 없어져 불었다요. 새벽에 일어나서 소가 없어진 것을 알고, 신작로까지 좇아갔는데 발자국만 있고 소는 못 찾았다네요."
"이번에 군수가 새로왔는디 일을 솔찬히 잘 헌다요. 우리 동네 신작로도 넓혀서 포장해 준답디다."
"엠뱅! 아! 차도 안 댕기는 신작로를 뭣 허로 포장한다요? 그 돈 있으면 동네 회관이나 새로 지어주라고 허씨요."
어릴 적 한여름 밤 집 앞 골목길은 온갖 감각 장치로 만들어진 훌륭한 극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골목은, 배우이자 관객이었던 많은 이들을 영원히 떠나보내고, 이제는 한집 걸러 주인 잃은 빈집과 돌담 밑 잡초만 무성한 황량한 폐허로 변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