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과 나의 꿈, 가드너

나의 살던 정원은

by Anton Choi
살면서 큰 충격을 받았던 날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그날을 꼽을 것이다.


충격이란 늘 예상하지 못한 일을, 아무런 준비 없이 맞닥뜨릴 때 찾아온다. 남들이 들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말 그대로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순간이었기에 그 충격은 꽤 컸다.

나의 아버지는 늘 과묵하셨고, 일 년 365일을 거의 일만 하며 사신 분이었다. 특별히 내놓으실 만한 취미나 장기도 없었고, 자식들에게 살갑게 정을 표현하는 분도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나는 그때의 아버지를 너무도 닮아 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데 서툴고, 따뜻한 말 한마디 정답게 건네지 못한다. 내가 그렇게 자라왔듯, 내 아들도 스스로 알아서 잘 성장하 것이라 내 편할 대로 생각하고, 믿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자라고 성장한 곳은 거의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인 곳이었다. 자연이 아닌 것은 오로지 도로와 마을의 집들 뿐이었다. 숲과 나무, 들판과 풀숲, 개울과 그 속의 바위들이 내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무와 화초를 좋아했고, 그것들의 터전이 되는 땅과 흙을 특히 좋아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무언가를 심어서 길러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씨앗이 싹을 틔우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더없이 즐거웠다.

개나리와 사철나무, 배나무의 가지를 잘라 꺾꽂이를 해 보기도 했고, 집 앞 사촌 형네 딸기밭에서 딸기 모종을 몰래 훔쳐와 봄에 붉게 익을 딸기를 상상하며 미니 비닐하우스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제대로 자란 나무 모종이나 잘 익은 딸기를 수확해 본 적은 없었다. 봄이 오면 세상 모든 것이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고 꽃들이 만발하는 그 변화 속에서, 나 역시 무언가를 만들어 성취해 보고 싶다는 마음만 앞섰을 뿐, 그것을 뒷받침할 지식이나 꾸준히 돌볼 끈기는 없었다.

외삼촌 댁에는 작은 텃밭이 하나 있었다.


매년 봄이면 그곳은 나와 외사촌 정환이 형의 경작지가 되었다. 우리는 땅을 파고 흙을 고르며 고랑을 만들고, 씨앗이나 모종을 심었다. 대나무 활대를 꽂고, 쓰다 버린 회색 빛으로 바랜 비닐 조각을 덮어 작은 비닐하우스를 흉내 냈다. 며칠은 환기도 시키고 물도 주다가, 이내 흥미를 잃으면 그 비닐하우스는 그대로 방치되었다.

외삼촌은 텃밭이 어지럽혀지는 것이 못마땅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텃밭을 오갈 때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한 평도 채 되지 않은 땅을 조금 파헤친 것이 무슨 큰 문제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오후, 밖에서 뛰어놀다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점심을 드신 뒤, 아버지와 외삼촌은 마루에 나란히 앉아 막걸리를 드시고 계셨다. 두 분의 대화 속에서 텃밭 이야기가 나왔던 모양이다. 아마 외삼촌은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이야기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남에게 싫은 소리 듣기를 싫어하시고, 폐 끼치는 것 또한 싫어하셨던 아버지는 술기운까지 더해져 기분이 언짢으셨나 보다. 마당으로 들어선 나를 보자, 아버지는 마루에 있던 플라스틱 바가지를 나를 향해 던지며 소리치셨다.


“니는 왜 자꾸 외갓집 텃밭을 파고 어지럽히냐! 나가, 이 자식아!”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아버지가 나에게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게다가 물건까지 날아왔다는 사실은 어린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아마 외삼촌도 많이 놀라셨을 것이다. 오히려 괜한 얘기를 해서 어린 조카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마음이 쓰였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 말대꾸도
하지 못한 채 집을 나왔다.


거창하게 가출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웠다. 겨우 뒷집 대문 앞까지 가서 나의 가출은 잠시 멈췄다. 그 집 대문 앞에서 나는 하염없이 땅만 파고 있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오후 일을 나가시던 외삼촌은 나를 보고, 멋쩍었는지 아니면 못할 말은 아니라 여겼는지, “아직도 여기 있냐?”라는 짧은 말만 남기고 무심히 지나가셨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억울하기도 했다. 그깟 땅을 조금 파헤친 게 뭐 그리 큰 잘못이라고, 반항심으로 오히려 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동네 주변을 하염없이 맴돌다가, 마을 뒤편 보리밭에 쪼그리고 앉았다.

보리는 이미 가슴 높이까지 자라 있어, 어린아이가 몸을 숨기기에는 충분했다. 논두렁에는 이미 삐비와 쑥, 달래, 고들빼기 같은 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 많은 잡초들의 이름을 다 알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어느새 보리밭에도 어둠이 내려앉았고, 이 집 저 집 밥 짓는 연기가 하늘 위로 올라 하얀 층을 이루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낮에 있었던 일로 아버지와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한참이나 망설였다. 혹시라도 나를 찾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런 움직임은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들판에 몸을 숨기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는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고, 아무도 내게 어디 다녀왔냐고 묻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아이가 사라졌다고 온 집안이 난리가 났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큰일을 저지를 위인은 못되었다.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했거나 낮에 일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녁을 먹고, 그대로 잠들었다. 나의 짧은 가출은 그렇게 끝났다.


꿈을 끝까지 놓지 않으면 이루어진다.


얼마 전, 업무로 만난 어떤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웃으며 말했다.

“큰일도 아니었네요. 뭐 그런 일로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 동훈 씨 곱게 자라셨네. 시골에 물려받은 땅도 있다면서요. 부럽습니다, 도련님.”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정말 별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충격이 컸던 이유는 그때까지 아버지는 내게 한 번도 큰소리를 내거나 폭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초창기 묘목을 심어.기르던 모습

어려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고 싶었던 걸까? 몇 년 전부터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다랭이논에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묘목을 사다 심고, 정원을 만들었다. 꿈을 이룬 것이다. 가드너가 된 것이다. 한동안 한 달에 한번 정원일을 하러 시골로 향했다. 즐거웠다. 땅을 파헤친다고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내 땅이니까, 내 시간이니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꿈을 잠시 접어둬야 했다. 다니던 회사에서 해외로 발령을 내는 바람에 연로하신 어머니에게 정원을 맡기고 떠나왔다.

// 손수 꾸며본 미니 화단

나는 언제쯤 고향으로 돌아가 내 정원을 돌볼 수 있을까? 요즘 또 꿈을 꾼다. 꿈속에서 정원을 가꾸는 꿈을 꾼다.

// 현재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