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기 위해 내가 버린 것
우리는 살아오면서 용감해야 하고, 비굴하지 않아야 하며,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운다.
나는 용감한 사람도 아니고, 나 자신에게조차 떳떳한 사람도 아니다. 다만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비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용감해야 할 상황을 못 본 척 피하며, ‘나는 비겁하지 않았어’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양심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쓴다.
더욱이 정의, 봉사, 희생, 헌신 같은 좀 더 차원 높은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런 상황이 주어진다고 해서 기꺼이 그것을 실천할 생각도 없다. 배워 왔던 것, 그래야만 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을 실천했을 경우 내가 다칠 수 있다는 두려움, 혹은 내가 손해 볼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한 대가를 확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나는 비겁한 행동을 많이 해왔다.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의 행동을 비겁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점점 자기중심적으로 완화되고, 도덕관념 또한 희미해지는 거 같다. 그래서 비겁한 행동을 하고도, 스스로의 판단 속에서는 그것이 정당하고 떳떳한 행동으로 분류되어 버린다. 어른이 될수록 죄를 지은 사람은 많지만,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내 비겁한 행동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 자진에게 실망한 지극히 속물적인 행동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6학년 선배들의 졸업식 날이었다. 졸업식의 메인이벤트는 후배 학생 대표가 선배들을 위해 송사를 하고, 졸업생 대표가 답사를 하는 것이다. 후배가 송사를 어떤 내용으로 하느냐에 따라 졸업식은 밋밋해질 수도 있고, 잔잔한 눈물과 함께 감동의 바다가 될 수도 있었다.
졸업식은 비포장 학교길에 마른 볏짚과 흙먼지가 가벼운 바람에도 이리저리 날리는 겨울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2월의 어느 건조한 겨울날에 열렸다.
시골 졸업식에 꽃다발은 없었다. 겨울철에도 꽃을 생산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그것도 시골 학교까지 비싼 꽃을 팔러 오는 장사꾼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꽃 대신 학용품을 선물했다. 학용품이라 해봐야 공책과 연필, 볼펜 정도였다.
같은 마을에는 6학년 졸업생 선배가 다섯 명 있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졸업 선물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다섯 선배 모두를 위한 선물을 준비할 돈도, 사려 깊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한 명의 선배를 위한 공책만 준비했다.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선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이로 인해 후회할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한 명에게만 졸업 선물을 해야 했다면, 그 대상은 당연히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가족처럼 지내온 사촌 정환이 형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졸업식 며칠 전부터 철민이 선배를 그 대상으로 정했다. 이유는 그 선배가 공부도 더 잘했고, 싸움도 잘했으며, 말발도 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 누구보다 더 잘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나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이익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나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들 그 선배에게만큼은 빠짐없이 선물을 할 것 같았고, 나 역시 그 선배에게 선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심리적 압박 때문이었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 선물을 전달하느냐였다. 사촌인 정환이 형이 자신에게는 졸업 선물을 주지 않고, 친척인 자신은 무시하고 철민이 형에게만 선물을 준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로 가는 등하굣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학교가 있는 면 소재지까지는 허름한 주택 몇 채가 늘어서 있고, 그 구역을 지나면 황량한 논들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선이 조금이라도 분산될 수 있는 면 소재지의 주택 사이 골목으로 철민이 선배를 불러, 가슴을 졸이며 몇 권의 공책을 선물로 건넸다. 그러나 선물을 전달하고 골목을 나오는 찰나, 뒤따라오던 정환이 형이 그 장면을 보고 말았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부끄러움에 정환이 형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정환이 형은 그런 내가 무안해할까 봐 그 장면을 애써 못 본 척 앞서 지나갔다.
그 후로 나는 정환이 형에게 늘 미안하고 떳떳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의 삶에서도 나는 권력자 앞에서, 그가 실제로 그 힘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먼저 몸을 낮추는 사람이었다. 적극적인 아부까지는 아니었지만, 작아져야 할 때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작아져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항상 뒤따라 오는 감정은 아주 작은 저항 조차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었다.
자괴감의 기억들은 문득문득 되살아나 나를 괴롭힌다. 나는 여전히 정의롭거나 용감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내가 비겁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잊지 않으려 애쓴다. 비겁함을 정당화하지 않고, 그 순간을 정직하게 평가하는 것. 그것이 '최소한의 양심'이자, 내 비겁함 때문에 상처받았을 이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