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방문

삶을 지탱하는 희망의 씨앗

by Anton Choi
봄과 함께 새 학기가 시작된다.

새로운 반 친구들과 서로 익숙해질 무렵이면 학교는 가정 방문을 시작했다. 새로 반이 되어 만난 친구들은 많지 않았다. 한 학년에 학생 수가 백오십여 명 남짓한 면 단위 학교였으니, 새로운 반이라고 해도 모르는 친구는 드물었다. 중학교 1학년만큼은 세 개의 초등학교 졸업생들이 한 곳에 모이는 구조라 다른 학기와는 달랐다.


부모님들은 농사 준비로 점점 바빠질 시기였고, 겨울을 갓 벗어난 산과 들은 봄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나무는 새순을 튀우기 위해 수분을 가득 머금었고, 회색 낙엽에 덮인 산허리엔 분홍빛 진달래가 봄을 알렸다. 들판의 녹색 보리 잎과 논두렁의 연둣빛 잡초들이 긴 겨울의 흔적들을 지워내고 있었다.


집 마당에는 겨울 내내 외양간에 수북이 쌓여 있던 두엄이 건조를 위해 옮겨져 널려 있었다. 만약 선생님이 이런 쇠똥 냄새나는 마당에 생각 없이 들어섰다면 여지없이 인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도대체 학교는 이런 바쁜 시기에 가정 방문을 왜 하는 걸까? 어머니는 마땅한 핑계라도 있으면 가정 방문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부담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를 키운 건 의도된 격려였다.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은 가정 방문을 와서 “어머님! 동훈이가 IQ는 좋은데 노력이 부족해서 아쉽네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나는 그 말이 선생님의 의도적 멘트였음을 깨달았다. 살아보니 나는 결코 머리가 좋은 아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학 입시 때까지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기억이 또 하나 있다.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날 어머니는 읍내 장날에 점집에 들러 내 사주를 보고 왔다.


“동훈이 너는 나이 들어 뭔가를 이루는 대기만성형이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늘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야 돼! 그러면 언젠가는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거야!”


살면서 나는 사주 같은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애써 시간을 내어 그것을 보러 다닌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과 어머니의 말씀은 가끔씩 내게 희망과 가능성이라는 불씨를 간직하며 살게 했다. 그 덕분인지 나는 특별한 불행이나 사고 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이 정도면 선생님과 어머니의 의도대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같은 것이 제대로 발휘된 것 아닌가 싶다. 가끔 이제 그만 쉬고도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대기만성(大器晩成)의 만(晩:늦을 만)이 인생에 있어 어느 시점을 말하는 것인 지를 몰라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더 큰 뭔가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머니가 점집을 찾았던 정확한 시점은 기억 못 하지만, 아마도 중학교 2학년 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던 것 같다. 남겨진 자식들을 홀로 어떻게 키워 시집장가를 보내야 할지, 집안의 막내인 나는 겨우 중학생이었는데 학비는 또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앞날이 막막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점집을 찾았을 것이다. 그 당시 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막막한 앞날을 이겨내기 위해 무엇이라도 잡고 싶었을 것이고, 의지할 곳과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얼마 전 이 이야기를 어머니께 꺼냈더니, 여든 중반으로 접어든 어머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자전거에 실은 설렘


중학교는 집에서 초등학교보다 1킬로미터쯤 더 먼 곳에 있었다. 입학하자마자 나는 어머니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다. 모두들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하던 상황에서, 아무리 형편이 좋지 않았더라도 막내아들의 요구를 마냥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형님이 자전거를 한 대 사다 놓았다. 중고 자전거였지만 쓸 만한 은색 자전거였다. 그 자전거가 얼마 후 음악 선생님의 가정 방문에 쓰이게 될 줄은 몰랐다.


음악 선생님은 평소 내가 듬직해 보였는지, 당신 반 가정 방문의 가이드 겸 운전기사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남녀공학이었지만 남학생과 여학생 반이 나눠져 있었기 때문에 여학생 반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듬직한 남학생 기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선택받았다는 사실이 영광스럽게 느껴져 기꺼이 선생님을 모시기로 했다.


순정 만화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들판을 달리는 장면을 떠올렸다. 흔히 학창 시절에 여선생님을 한 번쯤 짝사랑해 본 경험이 있다고들 하지만, 내게는 그런 대상은 없었다. 다만 시골 학교의 선생님들은 면내에서 거의 유일한 외지인이자 존경받는 엘리트들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뒤에 태우고 비포장 시골길을 달린다는 것은 사춘기 남학생에게 충분히 설레는 일이었다.


나는 뒤에 앉은 선생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조심조심 달렸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가 덜컹거릴 때면 선생님은 “어머, 깜짝이야!” 하고 놀라셨다. 그럴 때면 내 마음도 덜컹 내려앉았다. 오르막길에 접어들 때면 나는 금세 숨이 가빠졌다. 나는 속도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다. 선생님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 쉬고 페달에 힘을 실었다. 자전거에 처음 몸을 실었을 때 긴장했던 선생님은 점차 시골 자전거 길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큰 들숨과 함께 코끝을 스치는 봄바람은 유채꽃과 진달래꽃 향기로 가득했으며, 등 뒤로는 선생님의 온기와 은은한 숨결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