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안 올 그해 겨울

아버지의 겨울

by Anton Choi


추수가 끝난 가을과 겨울에도 아버지는 쉬지 않으셨다.


부족한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뒷산에 가시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겨울 산에서는 땔감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소나무는 마른 가지가 아니더라도 겨울철에는 수분이 적어 가벼웠다. 또한 소나무는 송진을 머금고 있어 화력도 좋았다.


겨울 산은 적막하고 건조했다. 아버지는 양지바른 곳에 지게를 받쳐 놓고, 육철낫과 톱을 들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부실해 보이는 솔가지 위주로 육철낫을 도끼 다루듯 줄기와 가지가 만나는 부분을 세차게 내리친다. 솔가지는 처음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저항하다 이내 ‘짝, 짝’ 소리를 내며 줄기와 분리된다. 육철낫 찍는 소리는 이 계곡에서 저 계곡으로 몇 번을 건너뛰다 사라진다.

장작용 나무로는 굵게 자란 잡목이나 병든 소나무가 그 대상이 되었다. 산에서 모아 온 나무들은 가을부터 한겨울이 되기 전까지 집 뒤 터에 차곡차곡 쌓아 올려졌다. 장작으로 쓸만한 큰 둥치들은 일정한 크기로 잘라 양지바른 곳에 쌓아 두었다. 아버지는 겨우내 시간이 날 때마다 육중한 도끼를 내리쳐 장작을 만들었다. 나도 가끔 동네 또래 몇 명과 어울려 놀다 서로의 힘을 자랑해 보겠다고 무거운 도끼를 들고 장작 패기 시합을 하곤 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장작 패기 역시 경험과 요령이 힘을 앞섰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차곡차곡 쌓여 가는 땔감을 보며 아버지는 비로소 안심했을 것이다. 그 당시 도시에서는 겨울을 대비해 연탄을 가득 들여놓았지만, 시골은 처마 밑이나 마루 밑 햇살 잘 드는 곳에 장작을 가지런히 쌓아 올려 겨울을 준비했다. 그 장작의 규모가 곧 그 집의 겨울 채비 정도를 말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사는 곳에도 연탄보일러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기름보일러도 들어왔다. 내가 사는 시골은 정부의 산림 보호, 산불 예방등의 행정력이 적극적으로 펼쳐지는 곳이 아니었다. 이처럼 땔감 채취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금지하거나, 새로운 난방 시스템으로 전환을 적극 장려하지도 않았지만, 문명의 편리함은 아무리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저항해도 언젠가는 그 편리함에 손을 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아버지도 한때 보일러를 거부했을 것이다. 약간의 수고를 감수하고 뒷산에 오르면 돈을 들이지 않고도 땔감을 구할 수 있는데, 무엇하러 돈을 들여 연탄을 들이느냐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화의 물결 속에 시골에도 보일러가 들어오자, 아버지는 더 이상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뒷산에 오를 필요가 없었다.


크고 작은 공사판도 생겨났다.

커다란 불도저와 포클레인이 농지를 정리했고, 곧게 뻗은 시멘트 농수로도 만들어졌다. 새마을운동 때 초가를 개량하여 기와나 스레트, 양철 지붕으로 개량했던 집들도 이제는 낡아 현대식 집으로 재건축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땔감을 위해 산에 오르는 일 대신 겨울에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이 생겨 났다.


우리 집 자체적으로도 공사가 있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넓은 들판의 논을 팔고, 가뭄 때 농수를 가장 먼저 확보할 수 있는 산 밑 다랭이논을 사셨다. 그런 탓에 우리 논은 정부 주도의 경지 정리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결국에는 스스로의 돈을 들여 조각조각 관리하기 힘든 논들을 큰 규모로 합치는 공사를 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변변한 저수 시설이 없어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으나, 인근에 큰 저수지가 생긴 뒤로는 잘못된 선택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공사판에 일을 나가실 때마다 어머니가 싸주신 흰쌀밥과 빨간 김치가 담긴 스텐레이스 찬합을 들고서 동이 트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가 해 질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 밥은 집을 나서자마자 곧 차갑게 식어 딱딱해졌을 것이다. 작업복은 여러 기수를 거쳐 해지고 빛바랜 군대 유격 훈련용 단색 훈련복과 비슷했다. 찢어져 터진 직업복은 어머니의 바느질로 다시 꾀 메어 입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해의 겨울이었다


나는 늦은 하굣길을 걷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흙먼지가 날리는 비포장길이었다. 길 양옆으로는 보리순이 검은 논 흙을 힘겹게 뚫고 올라오고 있었다. 멀리서 트럭 한 대가 공사 자재를 가득 싣고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부끄러움이 많았다. 드물게 지나가는 시골길 차량과도 쉽게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날도 나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트럭을 의식하고 고개를 숙이고 길을 걸었다. 트럭이 나를 지나치기 직전,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트럭 위 자재 더미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아버지가 나를 반갑게 부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렇게 반갑게 나를 부르시지 않았을 아버지였지만 그날은 아버지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와 마주쳐 순간 무척 반가웠나 보다. 그렇지만 나는 반대로 그 상황이 많이 당황스러웠다.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특별히 그 모습에 주의를 기울이는 아이들도 없었었는데, 나는 부끄러움에 아버지를 못 본 척 외면해 버렸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무루익 었을 무렵 아버지는 세상과 작별했다.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내 아버지의 모습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서둘러 아버지와의 시간을 더듬어 봤다. 그러나 내가 손을 뻗어 찾으려 한 기억들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골짜기 사이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기억에 남는 것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하나의 장면만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되살아 났다. 그것은 그날 트럭 위에서 반갑게 나를 부르던 아버지의 목소리, 그러나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아버지의 부림을 외면하는 나의 모습, 그것만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때 왜 나는 아버지의 반가운 부름에 호응하지 못했을까? 그 후로 겨울이면 늦은 오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터에서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트럭 위에서 나를 부르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함께 떠오른다. 그해 겨울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겨울이었다.


만약 다시 한번 그 순간이 내게 온다면 나는 환한 미소와 과장된 손짓으로 아버지를 반기며 소리 칠 것이다.


“아부지! 어디 가? 조심해서 일하고! 오늘 일찍 올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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