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과 연애 놀이

by Anton Choi
평범하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등학생 때까지 비슷한 타임라인 속에서 성장한다.


같은 뉴스를 보고, 같은 문화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한다.


나는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중학생 시절을 보냈다. 그 시기는 거대한 역사적 격랑이 연이어 몰아치던 때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개혁과 민주화를 추진했으며, 서울에서는 88 올림픽이 열려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다. 한편으로 김현희의 KAL기 폭파 사건은 아웅산 테러 사건 이후 또다시 대한민국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 TV의 보급으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지금과 다를 바 없이 빠르게 전달되었지만, 어린 나에게 이러한 외부의 사건들은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 시절 나의 일상은 다소 소극적이기는 했으나 유행가와 연애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문세, 이선희, 변진섭, 김완선이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특히 이선희의 파워풀한 성량과 높은 음역은 독보적이었다. 노래 좀 한다는 변성기 전 남학생들은 무반주로 그녀의 곡을 모창 하며 노래 솜씨를 뽐내곤 했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이 큰 인기를 끈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나는 “난 너를 사랑하네, 이 세상은 너뿐이야…”라는 가사를 친구들과 함께 부르기도 하고,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기도 했다. 실체도 없는 연인을 간절히 부르며 마치 지독한 사랑에 빠진 주인공이 된 양 착각하곤 했다.


원하는 음악을 원하는 시간에 듣는 것은 지금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내 레코드 가게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구매하거나, 취향에 맞는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원하는 곡이 나오면 재빨리 녹음 버튼을 눌러 나만의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어 들어야 했다. DJ의 목소리가 섞이지 않게 하려면 노래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가늠해야 했고, 녹음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는 잠시 숨을 멈추고 온 신경을 손가락 끝에 집중했다. 요즘은 스트리밍 서비스와 알고리즘이 전 세계의 음악을 내 취향에 맞게 편집해 앨범까지 만들어 주지만, 음악 하나에 기다림과 정성이 깃들었던 그 시절의 추억이 가끔은 더 그립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지상 과제는 '여자 친구'를 만드는 일이었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연애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 있었다. 딱히 마음에 둔 여학생도 없었지만, 설령 있다 해도 어떻게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몰랐다. 펜팔은 이미 구식이었고 삐삐나 휴대전화는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다. 대신 집집마다 놓인 유선 전화가 있었고 우리는 전화기를 이용했다. 우리는 장난 삼아 같은 국번 뒤의 번호 네 자리를 무작위로 눌러 또래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리면 말을 걸어 인연을 만들어 보는 방법을 썼다. 국번이 같다는 건 같은 지역이라는 뜻이었고, 어쩌면 천생연분을 가까이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스릴이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일종의 ‘연애 피싱’이라 칭할 수 있겠다.


또 다른 방법은 '의도적인 (허위) 소문내기'였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더라”는 말을 친구들을 통해 퍼뜨려 상대방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관심을 끄는 방식이었다. 약간은 유치하고 비겁한 방법이었지만, 남녀 분반이었던 당시 학교 체계에서 나름 효과적인 '썸'만들기의 출발이었다.


나 역시 분위기에 휩쓸려 이 '소문 전략'을 한 번 시도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진심보다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의도가 앞섰던 탓일까. 기대했던 풋풋한 연애는 없었다. 복도에서 그 아이를 마주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민망함과 부끄러운 감정, 부실한 자신감 때문에 더는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이 나버렸다.


그 시절엔 상대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이런 행동들이 어느 정도 허용되었다. 대부분 악의 없는 서툰 장난이었고, 요즘과 같은 과한 집착에서 오는 사건사고도 거의 없었다. 그저 서로 '관심'을 주고받는 것에 설레어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내 감정만큼 상대방의 감정도 존중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집착이나 스토킹, 가스라이팅 같은 것들이 사회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며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 시절의 연애는 지금보다 훨씬 단순하고 쉬웠던 것 같다. 고민할 것도, 조심할 것도 적었던 아날로그 시대의 풍경 속에서, 「붉은 노을」의 가사가 전하던 뜨거운 고백은 ‘순정’이라는 이름으로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요즘은 순정과 집착의 경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서로에게 좋은 추억이 아니라 깊은 상처 만을 안겨 줄 뿐이다.